미국 이라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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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라는 나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2.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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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최근 ‘미국영화 톺아보기’라는 책을 펴냈지만, 미제(美製)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런 따위와는 단 1도 관련이 없다. 지난 4월 펴낸 ‘한국영화 톺아보기’와 짝을 이루기 위해서 제목을 ‘미국영화 톺아보기’라 했을 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일망정 오히려 나는 그런 사실조차 시답잖게 생각하는 대미관(對美觀)을 갖고 있다.
하나 더 말하면 나는 미국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든 남의 나라 일이라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어떤 흥미도 크게 못느낀다. 그런데도 11월 3일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받는 느낌은 그게 아니다. 한 마디로 ‘뭐, 저런 나라가 다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선거가 끝난 지 몇 주가 지나도록 대통령 당선인은 있는데, 패자가 없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언론이 일제히 ‘바이든 당선’으로 판정한 11월 7일(현지시각. 이하 같음.) 이후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워싱턴에서 11월 14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이 참가하는 대선 불복 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거리에선 “트럼프가 졌다”며 대선 결과에 승복하길 촉구하는 반트럼프 시위대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낮 동안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는 밤이 깊어지면서 두 진영 간 유혈충돌로까지 번졌다. 트럼프 지지층이 거리로 나선 건 현직 대통령이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아서다. 바이든이 대선 승리를 확정할 매직넘버(270명)를 훌쩍 넘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의 결과일 뿐이라며 소송으로 승자를 가리겠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직접 워싱턴 집회에 참가하진 않았으나 시위 현장을 지나며 지지자 독려에 나섰다. 그가 차창 밖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지지자들은 “4년 더”라고 외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임기가 두 달 남짓 남은 시점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9일 국방장관을 내쫓은 데 이어 11월 17일엔 이번 선거에 부정이 없다고 밝힌 선거보안 최고 당국자까지 해임했다.
아무리 우리와 다른 선거제도라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당선의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버티는 이유 중 하나가 백악관을 떠나게 되면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민ㆍ형사상 ‘면책특권’도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설마 그래서인가?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하고 맞닥뜨리게 될 소송 및 수사 대상 목록은 다음과 같다. 가족 기업인 트럼프 그룹의 보험ㆍ금융사기 및 탈세 혐의, 불륜관계 폭로를 막기 위한 돈으로 입막음 의혹, 성범죄 및 명예훼손 소송, 취임 이후 사업체를 경영하고 외국 정부로부터 수백만달러의 수입을 얻은 혐의, 가족 유산을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
한편 대선 과정에서 줄곧 조 바이든 당선인을 지지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친조카 메리가 축배를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 역시 미국이라는 나라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임상심리학자인 메리 트럼프(55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형인 프레드 주니어(1938∼1981)의 딸이다. 메리는 11월 7일 트위터에 샴페인을 든 채 활짝 웃는 자신의 사진을 올린 후 “미국을 위한 건배, 모두 고맙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 낙선에 축배를 들기 전 메리는 지난 7월 회고록 ‘넘치는데 결코 만족을 모르는’도 발간했다. 메리는 회고록에서 삼촌이 대리시험으로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던 자신의 부친이 43세로 숨질 때 삼촌이 수수방관했으며 가문 재산을 분배할 때도 조카를 배척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척을 졌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발간도 그렇지만, 핏줄인 메리의 그런 행동이 한국적 정서 때문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메리의 손을 들어줘 트럼프 대통령 측이 발간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애써 이해하자면 아마 민주주의가 잘된 나라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또 있다. 부정선거라는 주장과 별도의 트럼프 대통령 행보다. 코로나19로 인해 27만 명 가까이 사망하고, 하루 확진자가 20만 명 넘게 발생하는 등 총 1,320만 명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있는데도 대통령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미국인이 집이나 예배 장소에 모여 기도를 드리자”는 추수감사절 포고문을 냈다니 믿기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은 바이든 인수팀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11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에 필요한 절차에 협력할 것을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그나마 다행이다. 3일 후엔 “다음 달 14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하면 백악관을 떠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현직 대통령이 선거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에도 그렇듯 수수방관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나라 미국이다. 설사 그런 것들이 너무 잘된 민주주의 때문이라 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나라 미국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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