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공익제보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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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공익제보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1.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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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현 칼럼니스트 겸 법사랑 위원 전주연합회 청소년보호분과 위원

명예훼손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적시해야만 처벌받는 죄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을 적시하여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 형법에는 엄연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 제 1항을 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다만, 형법 제 310조에 따라 진실한 사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시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애매하지 않은가? 사실을 적시하여도 명예훼손이 된다고 하니 우리는 그 명예의 침해 가능성이 아예 없도록 당사자에게 도움 되는 사실만 적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한 사실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시한 경우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적시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데 있음을 사법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가해자들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피해자들이다. 예를 몇 개 들어본다. 의료사고를 당한 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거나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 어김없이 의사들은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한다. 허위사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명예가 침해되었다고 소(訴)를 제기하면 환자(피해자)는 상당한 압박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비 피해자들을 막기 위한, 공공의 이익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였다 하더라도 현 우리나라 사법부는 해당 병원의 명예침해를 더 중시 여겨 대부분 유죄를 선고한다. 병원 실명 홍보 글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병원 실명 의료사고 사실 게재는 문제가 있다고 하니 의료서비스를 받는 주체인 환자들은 좋은 병원을 권유받을 권리는 있어도 나쁜 병원을 거를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현실을 들 수 있다. 2018년에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저명 인사를 필두로 자신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공의 장을 통해 알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얼마 못가 위축되고 말았다. 원인은 성범죄 가해자들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따르면 가해자 측에 의해 고소당한 성폭력 피해자의 40% 가량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범죄 가해자가 성범죄 피해자를 선 고소하여 압박하고 합의를 유도해내는 (처벌을 면하는) 악법조항으로 적용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익제보자는 또 어떤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자 하는 예비 공익제보자들은 많지만 선뜻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은 드물다. 공익신고 대상자는 공익 침해자를 대표하는 대표자, 조사 기관, 수사 기관, 국민권익위원회, 국회의원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이 외 사람들에게 제보할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있으므로 부담 없이 공익제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부 고발을 할 경우 곧 조직을 배신한 행위로 인식해버리는 후진적 문화가 아직도 팽배해있기 때문에 직접 소속 기관의 대표자에게 신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울러 수사 기관에 조사 및 수사를 의뢰하는 것은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공익침해자가 증거 인멸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어지기 때문에 신속성의 차원에서 언론사에 먼저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기업의 불법비리 행위와 관련 있는 법률들이 공익신고 대상 법률에서 모두 제외되어 분식회계, 배임?횡령 등 기업의 부패 행위에 대한 공익신고는 보호대상이 되지 못하므로 이러한 불법비리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시민단체에 알리거나 언론사 제보를 할 수밖에 없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법익의 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위헌인지의 여부를 심사 중이다. 합헌을 주장하는 측은 진실을 밝히는 행위도 명예에 치명적 훼손을 가할 수 있으며 아직 우리 사회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이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변론한다.
그러나 명예라는 개념은 지극히 추상적이어서 그 침해 유무와 침해 정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하며, 설령 판단을 한다고 해도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어 권력과 고위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 적용이 될 소지가 크다. 또한 법을 준수하지 않고 타인의 법익에 중대한 침해를 가한 자의 능히 실추되어 마땅한 명예까지 보호해주기 위해 일반 시민의 진실을 말할 권리를 사전에 제약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재가치가 정녕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은 가장 큰 문제인 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만으로도 위헌의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잃게 만들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까지 박탈하여 헌법정신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진실한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묻히게 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회적 약자끼리의 연대는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국 정의실현과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만다.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은 명예훼손 행위를 어떻게 처벌하고 있을까? 대부분 허위사실 적시에만 명예훼손을 적용하고 있고 아예 명예훼손죄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규정이 없고 미국은 현재 4개 주에서만 명예훼손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나머지 주는 오래전에 명예훼손죄를 폐지했고 명예훼손은 오로지 민사 손해배상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영국은 사인 간 명예훼손죄를 10년 전에 폐지했으며 일본은 명예훼손죄가 우리와는 달리 친고죄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규정이 있지만 공익적인 목적으로 적시했다는 것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고 적시내용이 진실이기만 하면 처벌을 면한다.
2011년 3월 유엔인권위원회는 한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이어 2015년 11월에는 유엔 산하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가 동일한 권고를 해왔다. 인권 선진국을 본받고 세계적인 추세에 합류하라는 뜻이다.
이제야말로 실로 오랫동안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하는 데 일조해 온 구시대적 유물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릴 때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법조항 폐지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의 성토 글을 인용하며 본 글을 마친다.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훼손되는 명예가 과연 진정한 명예인가? 과장된 평판이나 헛된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 결과인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법이고 우리 사회의 감시와 고발 기능을 마비시키는 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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