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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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를 규탄한다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3.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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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해 여름 간신히 참으며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부가 추진하려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집단휴진 등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력 반발,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무산된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이야기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여름에도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정부가 추진하려던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한방첩약 급여화·원격의료 같은 정책에 반발하며 벌인 의사들 집단휴업 따위 총파업이 그것이다. 결국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 등을 위한 정책 추진을 코로나19 안정화 때까지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2020년 9월 4일 합의하면서 ‘의료대란’은 진정 국면에 접어 들었다.

그러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대한의사협회 산하단체이면서도 이런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며 바로 복귀하지 않았다. 복귀는커녕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합의 저지를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서면서 복지부와 의협 간 합의문 서명 시간이 두 차례나 미뤄지고, 급기야 장소가 바뀌는 소동까지 국민들은 지켜봐야 했다.
그러니까 국민의 생명·건강과 관련된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중차대한 정부 정책 추진이 의사단체들 반발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린 것이다. 첫 걸음을 내딛으려던 공공의료 확충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10년간 의대생 4,000명을 늘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고, 공공의대 설립으로 공공의료를 확대해 나가겠다던 정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겨레(2020.9.5.)에 따르면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의사들의 이기적 집단행동에 정부가 끝내 뒷걸음질을 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도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공공의료 정책 논의에서 시민을 배제하고 이익단체인 의사단체의 요구대로 공공의료 포기를 선언한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백기투항’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거센 데 대해 복지부 쪽은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하며 수련환경을 개선해 의료 질을 향상한다는 방향에는 의료계와 정부가 공감하고 있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합의로 인해 현 정부 임기 안에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정책은 사실상 추진되기 어려워졌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합의문에 명시된 ‘코로나19 안정화’가 언제 이루어질지 미지수라 그런 보도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금 막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방역당국 설명처럼 집단면역 시기를 올 11월로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6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 같은 정책이 물건너 갔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기는 이유다.
그럼에도 민간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기형적인 의료체계를 개선하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며 공공의료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더 피부로 와닿았다. 한국일보(2020.9.7.)에 따르면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병상 수의 9%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입원환자의 90%는 공공병원에 입원해 있다.”
기형적으로 비대한 민간 의료의 저항을 넘어서지 못한 정부지만, 대한의사협회의 그런 세 과시가 국민에겐 의사들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키웠다. 오죽했으면 “코로나19 위기가 극에 달해 국민이 죽어가는데도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2000년 개정된 ‘의료악법’ 때문”이라며 법 개정을 요구한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고, 30만 명 넘게 동의했을까.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때부터 파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며 확신해왔다. 그래서 국민들이 의사가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찬진 집행위원장은 “공공의료 공급체계가 20~30%라도 확보된 평균의 국가였다면 의사들이 이런 몽니를 부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의료 정책의 이해관계인인 의사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은 필요한 과정이지만 이들을 의료 정책 협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사들 요구처럼 노동 정책은 민주노총이, 교육 정책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정부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고 가정해보라”(앞의 한국일보)고 반문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의료시설 중 공공의료 시설은 5%에 불과하다. 의사들 파업은 역설적으로 다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교훈에 기여한 셈이다. 이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인데, “공공의료가 탄탄했다면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집단행동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전체가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 설립으로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환자들을 내팽개치면서까지 반대하는 의사들도 이해가 안되지만, 거기에 백기 투항하는 정부와 여당, 대한의사협회 편을 드는 제1야당 등 모두가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하는 탄식의 주범들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한석규 같은 의사는 현실 속에선 볼 수 없는 신기루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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