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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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3.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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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기고


 

 
3월 2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민일보 인터뷰를 통해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대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현직 검찰총장의 일간신문 인터뷰를 통한 집권 여당의 정책 입법 비판에 깜짝 놀랄 새도 없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니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 운운하더니 3월 4일엔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입장문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우선 이런 그의 입장은 ‘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하는 탄식을 절로 터져나오게 한다. 검찰개혁에 불만을 품고 사퇴로 저항하는 보통의 검찰총장 같은 모습이 아니어서다. 2019년 7월 인사청문회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모습은 확실하게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징계청구를 당하는 등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볼썽사나운 일전을 치를 때도 임기를 마치겠다는 의지가 굳건한 것으로 알려졌던 터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선언은 그야말로 전격적이라 할만하다.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정치판에 뛰어들 것이란 예측이 기정 사실화된 분위기도 읽힌다. 
청와대는 한 시간 만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수용을 발표했다. 사퇴까지 불러온 법무부장관과 맞붙는 등 ‘까불어대던’ 검찰총장을 두고 보던 때와 다른 신속한 결정이다. 이번엔 임기 보장이고 부정적 여론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듯한 사표 수리라 이 역시 전격적이다. 동시에 사표가 제출되었던 청와대 민정수석도 경질했다.
나는 ‘너무 살기 좋은 나라’(전북연합신문, 2020.11.25.)에서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임명한 검찰총장이 책무를 소홀히 하거나 젯밥에 더 신경을 쓰는 지경이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2년 임기제에 연연해 그냥 놔둘 일이 아닌 걸로 보인다”는 주장을 이미 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정치적 총장’ 행보를 하는 등 너무나 귀책사유가 명백하게 드러나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퇴 선언으로 선수를 쳤다. 허를 찔린 셈이고,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뒤통수를 맞은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앞의 칼럼에서 “바라건대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되는 너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으면 한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 야권의 1위 대선주자가 되는 너무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이다.  
임기를 못채운 역대 검찰총장이 더 많긴 하지만, 이번엔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 ‘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하는 탄식이 절로 터져나와서다. 임기 4개월을 남긴 윤 검찰총장 자진사퇴 파동은, 돌이켜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자충수 내지 자승자박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 입장에선  배은망덕을 떠올리며 괘씸하단 생각도 가질 법하다.
  또한 그것은 조직에 충성할 뿐인 열혈 검찰주의자에 불과했던 검사 윤석열을 이런저런 논란에 아랑곳없이 스카웃해 중용한 대표적 인사 실패이기도 하다. 정권이 일개 검찰총장에게 발목을 잡힌 것은 물론 휘둘리는 모양새가 되어서다. 그 지점에서 무엇보다도 야권 1위의 대권주자로 키워준 셈인 리스크가 가장 뼈아플 것이다. 
더 볼만한 건 앞으로다. 현재로선 그가 2022년 3월 9일 있을 대선에 출마할지 알 수 없다. 검찰의 중립성 훼손 같은 비난이 따르겠지만, 누구나 정치할 수 있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하면 시기의 문제일 뿐이란 짐작도 해볼 수 있다.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뒤 급상승한 여론조사 지지도가 그걸 말해준다. 
매달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를 하는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전 검찰총장은 2020년 초 1%에서 시작해 추미애-윤석열 충돌 사태가 벌어지자 13%까지 올라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한 뒤에는 9%로 떨어졌지만, 사퇴 뒤에는 24%로 치솟았다. 그것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같은 1위의 지지율이다.     
어떤 조사에선 32.4%를 찍어 집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24.1%)와 이낙연 대표(14.9%)를 멀찌감치 따돌린 1위로 나오기도 했다. “정치할 생각이 없다”던 윤석열 전 총장이 방향을 튼 이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게다가 3월 5일 리얼미터가 한 여론조사를 보면 48.0%가 그의 정계 진출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부적절하다는 답은 그보다 낮은 46.3%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군인만 하던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시대가 아니다. 검사만 하던 윤 전 검찰총장도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잘할지 몰라도 국정 운영까지 그럴지는 미지수다. 그 분야 전문가로 칭송받을망정 대통령감은 아니란 얘기다. 여전히 ‘뭐 저런 검찰총장이 다 있나’ 싶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뭇 궁금해지는 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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