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역사 새로 쓴 배우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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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역사 새로 쓴 배우 윤여정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4.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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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내가 ‘미나리’(감독 리 아이작 정, 한국명 정이삭)를 본 것은 배우 윤여정(순자 역)의 ‘2021영국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이다. 3월 3일 일반 개봉했으니 엄청 늦은 관람인 셈이지만, 개인적으론 기념비적 영화이기도 하다. 경로우대(만 65세 이상)를 적용받아 단돈 3000원(5000원인데, 카드 할인분 2000원 더 차감)에 본 첫 영화라서다.
금방 ‘엄청 늦은 관람’이라 말한 것은 ‘미나리’ 및 배우 윤여정이 이미 많은 상을 받는 등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생충’ 이후 아마 가장 뜨거운 보도 열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가령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은 건 ‘2021영국아카데미상’까지 37번이다. 제92회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해도 이미 핫한 배우 윤여정이라 할 수 있다.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이 매번 보도되며 화제를 낳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쓴 일이라서다. 예컨대 4월 4일(현지시간) 진행된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의 윤여정 수상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남녀 배우를 통틀어 사상 최초다. 4월 11일(현지시간) 열린 ‘2021영국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의 여우조연상 수상도 마찬가지다.
2018년 ‘아가씨’(감독 박찬욱)가 한국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 2020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지만, 배우 개인상은 윤여정이 처음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남녀 배우를 통틀어 사상 최초다. 감독상·남우조연상·외국어영화상·음악상·캐스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윤여정만 여우조연상 수상자가 된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윤여정은 화상을 통해 영어로 전한 수상 소감에서 “모든 상이 의미 있지만 이번엔 특히 ‘고상한 척한다’고 알려진 영국인들에게 좋은 배우로 인정받아서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한겨레, 2021.4.13.)라고 익살스러운 소감을 전해 시상식을 지켜보던 이들의 웃음과 박수를 끌어내는 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미국캐스팅협회가 수여하는 ‘아티오스상’을 받은 ‘미나리’ 소식이 전해졌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사흘전에는 윤여정의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FISA)’ 여우조연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FISA는 ‘미국 독립영화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상이다. 이로써 윤여정은 ‘미나리’ 속 한국 할머니 순자로 모두 38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가 됐다.
그리고 여러 매체와 많은 사람들 예측대로 윤여정은 그예 4월 26일 오전 9시(한국시간) 열린 제93회아카데미(일명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남녀 배우 통틀어 한국 최초로 받은 아카데미 연기상이다. 90년 넘는 아카데미 역사로 따져도 아시아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은 건 일본영화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이고 두 번째란다.
아낌없이 축하할 일로 지난해 제92회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이룬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의 4관왕 수상에 이은 쾌거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니 ‘기생충’도 이루지 못한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란 영화역사를 새로 쓴 윤여정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지 지상파 3사가 윤여정의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을 정규 방송 중단하고 생중계했을 정도다. 특히 SBS는 정규 프로 ‘뉴스브리핑’(오후 2시~4시)중 90분쯤을 윤여정 수상 관련 내용을 내보냈다. 그런데 26일 밤 MBC 뉴스데스크 보도에선 윤여정 수상이 42관왕이라고 해 앞에 말한 것과 차이를 보인다.
봉준호 감독 말처럼 로컬(지역)영화제일 뿐인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에 매스컴이 집중되는 것은 왜일까? ‘세계영화사 새로 쓴 기생충’이란 글에서 이미 말했듯 아마도 세계 영화산업의 본산이자 중심이라 할 미국 할리우드에서 개최되기 때문일 것이다.
수상자 선정 방식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권위를 더한다. 아카데미는 소수의 심사위원들만 참여하는 다른 국제영화제와 달리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469명(‘기생충’때 기준)의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회원들은 제작자·감독·배우·스태프 등 영화인들이다.
영화역사를 새로 쓴 윤여정이지만, 이미 우리 여배우들의 연기는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니스·칸·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1987)·전도연(2007)·김민희(2017)가 각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서다. 그들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는 각각 ‘씨받이’(임권택)·‘밀양’(이창동)·‘밤의 해변에서 혼자’(홍상수)다.(괄호안은 감독).
이밖에도 신혜수가 몬트리올영화제(1988) 여우주연상, 문소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2002)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의 세계영화제 수상 원조로 꼽히는 강수연은 2년 뒤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에 출연해 모스크바영화제(1989) 여우주연상을 또 수상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75세(1947년생)란 나이로 이룬 쾌거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이 많은 배우 역대 3번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데, 그 노익장이 50만 되어도 퇴물이 되다시피하는 우리 영화계 현실과 겹쳐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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