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관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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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관심으로
  • 김유신 기자
  • 승인 2021.08.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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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헌 전주덕진소방서장

길었던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이제 아침과 저녁이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머지않아 우리에게서 뜨거웠던 폭염의 기억을 씻어 가겠지만, 우리는 올여름 폭염이 우리에게 준 상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국 496개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의 집계로 조사되는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8월16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296명으로 전년 동기간(644명) 대비 2배 이상 증가했고, 이 중 추정 사망자는 20명으로 2011년 감시체계 운영 이후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커짐에 따라 이에대한 대비책 마련의 필요성 역시 커져가고 있다.

본격적으로 폭염의 대비책을 찾기에 앞서 우리는 재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재난은 크게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자연재난은 자연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으로 태풍과 폭설, 지진 등이 해당한다. 이와 달리 사회재난은 인간의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을 말하고, 과거 사고성 재난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환경 문제도 사회재난으로 여기는 추세이다. 사회재난의 대표적인 예로는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사고성 재난과 런던 스모그 사태와 같은 환경 재난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폭염의 경우,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중 어떤 재난으로 보아야 할까.
어느 때보다 피해가 컸던 2018년 폭염의 예를 보자. 2018년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163명 가운데 95%(152명)가 더운 날씨에 장시간 노출될 때 발생하는 ‘열사병’ 진단을 받았는데, 이 중 75%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온열질환자 발생 장소로 야외작업장과 집이 각각 28.1%와 13.8%를 차지했으며, 소득 계층별로는 소득 상위 5분위에 속하는 고소득층은 인구 1만명당 4.8명 발생했지만, 의료급여수급자 같은 저소득층은 1만명당 13.8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위 기록을 종합해보면 폭염은 장시간 열에 노출되는 걸 피할 수 없는 60대 이상 고령층,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한 주택 거주자와 작업장의 근로자, 이른바 사회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재난이었다고 판단 할 수 있다.
이처럼 폭염 피해가 다른 자연 재난처럼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취약계층에게 집중된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폭염을 사회재난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폭염 피해에 대한 해결책 역시 사회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강원도 춘천에서는 폭염에 지쳐 생사를 넘나들던 80대 기초생활 수급 노인을 이웃 주민과 통장이 살려낸 소식이 전해졌다. 며칠째 노인의 집 현관문에 그대로 걸려있던 요구르트 봉지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본 이웃 주민과 통장이 119에 신고하여 극적으로 노인을 구조했다는 이야기였다.
사회기능의 실패와 사회적 유기로 인해 혼자 고립된 취약계층에게 이웃의 사소한 관심으로 노인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앞으로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데 좋은 귀감이 된다.
2015년 UN총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Leave no one behind)’라는 가치를 의제로 설정했다. 폭염 문제의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역시 이 의제를 따라야 할 것이다. 사소하지만 큰 ‘관심’으로 노인을 구한 이웃의 사례와 같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관심’으로 폭염 문제를 극복해 나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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