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아프간’ 프랑스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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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아프간’ 프랑스의 길을 갈 것인가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9.0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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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아프가니스탄 함락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도 저렇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나서서 ‘아프간과 한국은 다르고,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미군 철수는 아프간 함락의 부차적 원인일 뿐 진짜 원인은 아프간 집권층의 자강(自强) 의지 부재다. 집권층이 스스로 안보를 포기하는 나라는 제2의 아프간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허수아비 군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아프간은 확인시켜줬다.
아프간의 어처구니없는 패배는 1940년 프랑스를 연상시킨다. 프랑스는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침공에 맥없이 무너져 충격을 줬다. 이 전쟁에 예비역 대위로 참전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당시 상황을 증언한 저작 ‘이상한 패배’에서 “내각과 의회는 평화주의에 빠진 채 분열됐고, 군은 독일의 획기적인 병력 증강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썼다. 프랑스는 독일과 전쟁 이전에 이미 정치·군사적으로 패배했다는 게 블로크의 진단이다. 히틀러의 치밀한 전쟁 준비를 파악조차 못했던 프랑스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눈감은 채 평화가 왔다고 떠들며 한·미 연합훈련을 무력화한 문재인 시대 대한민국과 오버랩 된다.

반(反)나치 레지스탕스운동을 벌이다 게슈타포에 총살된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는 프랑스판 징비록이다. 프랑스인들이 위기 때마다 꺼내 읽으며 애국심을 되새기는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도 널리 읽혔다. 1940년 프랑스와 같은 ‘이상한 패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트럼프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민주당과 공화당 일각에서 형성된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시사 잡지 ‘애틀랜틱’ 기자 조지 패커는 최근작 ‘마지막 최선의 희망(Last Best Hope)’에서 미 하원의 트럼프 탄핵 시도와 코로나19 확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의 흑백 갈등 등이 “민주주의 붕괴 징후”라고 썼다. 또 “이제 미국은 이라크 같은 실패국가가 된 듯하다”며 “트럼프의 재선은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정권 말기 풍경은 패커가 기술한 지난해 대선 전야 혼란 속의 미국, 블로크가 기록한 1940년 프랑스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문 대통령은 주적인 북한에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된 듯 김정은과의 대화에 집착하고, 송영길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북한이 생존과 체제 유지에 절박한 나라여서 남침 가능성이 없다고 호도한다. 여당 의원들은 김 여정의 ‘한·미 훈련 중단’ 요구를 복창하듯 연기 연판장을 돌렸다. 군은 훈련보다 성범죄 해결이 더 급한 상황이다. 기강이 무너진 군에 자강은 언감생심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위기는 점점 확산되는 상황이고 부동산·일자리 정책 실패로 인한 계층 간·세대 간 갈등도 확산 일로다.
대한민국이 아프간과 프랑스가 겪은 ‘이상한 패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로썬 비관적이다. 안보·경제·사회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는 퍼펙트 스톰 상황에서도 여당 대선 주자들은 대북 평화주의에 빠져 있고 국민의 힘은 분열로 날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자각 속에서 분열적 행태를 버리며 통합 정신으로 뭉쳤다. 중도파 공화당 인사들은 해당(害黨)행위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당보다 국가 먼저’를 내세워 반(反)트럼프 연대 전선에 참여했다. 그런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미국은 트럼프식의 전체주의 급행열차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민주세력이 연대해 트럼프식 전체주의를 멈춰 세운 미국의 길을 갈 것인가, 적 앞에서 내부적으로 붕괴한 아프간·프랑스의 길을 갈 것인가, 2022 대선을 앞두고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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