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언어, 국민의 삶 밝히는 횃불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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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언어, 국민의 삶 밝히는 횃불 돼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11.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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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우리 앞에 남은 위대한 과업을 위해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에이 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길지 않다. 만연체 문장이지만 272개 단어로 이뤄져 간결하다. 연설 시간도 2분 남짓이다. 그런데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연설로 꼽힌다. 전 세계에 민주주의 가치를 알리고 민주정부를 실현하려는 링컨의 굳센 신념과 의지가 오롯이 담긴 결과다. 링컨에 앞서 게티즈버그 국립묘지에서 2시간여 장광설을 펼친 에드워드 에버렛 국무장관마저 링컨 연설에 탄복했을 정도다. 지도자의 말과 언어가 갖는 힘이란 이런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막말과 실언, 비방전이 점입가경이다. 이러니 "최선이 아닌 차악의 후보를 뽑는 대선이 됐다"는 자조와 한탄이 쏟아질 만하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궁핍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막말과 욕설을 내뱉는 무뢰한이 되는 건 아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언품과 심성을 가다듬으면 울림을 주는 화법과 정서적 인간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프랑스 콩도르세가 말한 소위 '인간의 진화적 발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야 후보들의 망언 추태는 '진화적 발전'은 커녕 자신만 옳다는 확증편향에 빠져 빚어진 퇴화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아주 잠깐 권력의 맛만 봤는데도 불구하고 이기적으로 바뀌고 타인의 관점에 무관심해져 버린 것이다.
지도자의 말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도구다. 리더의 언어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면 말에 진정성과 품격, 온기가 묻어나야 한다. 비열한 인신공격에 빠져 국민 정서를 외면하는 후보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말의 진정성은 내면의 진실과 윤리적 가치가 반듯한 인품과 맞물릴 때 나온다. 부동산 부패 카르텔을 설계해 놓고도 거짓과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후보에게 말의 진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SNS에 '개 사과' 사진을 올려 국민을 조롱한 후보의 언행도 진정성과 거리가 멀다. 기본소득, 국민지원금, 원가주택 등 표를 노린 온갖 감언이설도 마찬가지다.
말의 품격은 상대를 헐뜯는 저질 공방에서 벗어나 의연하게 대처할 때 나온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2016년 민주당 선거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겨냥해 "저들이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고 한 것이 그런 경우다. 가족이 육두문자를 했다는 이유로 욕설로 되갚고, 경쟁 후보에게 "쥐어패 버린다"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후보는 품격 제로다. 말의 온기는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공존을 지향할 때 퍼진다. 이념적 다양성을 허용하고 국민을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이 있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다.
대선을 앞둔 지금 후보 최대의 적은 후보 자신이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후보의 말은 신중하고 절제할수록 무게를 갖는다. 상대의 역량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필요하나 감정에 치우친 다언과 실언은 후보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넣는 리스크일 뿐이다. 민심을 받드는 후보라면 낡은 정치의 고질병인 '막말'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 대신 도덕적 원칙과 고결한 목표를 내세운 상징적 메시지와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게티즈버그 연설과 링컨의 성품에 감명받은 미국 북부 군인들은 링컨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그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여야 후보들이 늘어놓는 말의 성찬이 그런 감동까진 주지 못하겠지만, 중대 기로에 선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을 밝히는 횃불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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