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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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11.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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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자원(資源) 외교차 개발도상국에 자주 출장을 가는 정부관계자가 근자에 이런 말을 전해줬다. 개도국, 특히 아프리카 나라의 관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한국이 부럽기 짝이 없을 만큼 고속 성장을 이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런 인식이 없는 것 같다"며 자기들은 알고 있는데 한국인들만 모르고 있는 세 가지를 지적 하더라는 것이었다.
첫째, 자기들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모르는것 같다. 둘째,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지 모르는것 같다. 셋째, 이웃인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대단하고 두려운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개도국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무서운 존재인 중국과 일본을 양쪽에 두고 있으면서 그들을 우습게 보는 국민은 한국인 밖에 없는것 같다"는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다음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드는 관찰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신랄하게 표현한 것으로 우리로서는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첫째는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문제 즉 경제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화약고를 끼고 사는 우리의 안보 상황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우리가 인접 외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연 잘사는 나라인지에 관해 우리 국민 가운데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개도국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OECD 회원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살 만큼 사는 나라'로 보이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이지만 우리 스스로 10~20년 전과 비교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못산다고 불평불만 하면서도 '호강에 겨워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둘째의 관찰이다. 세계사람 눈에는 우리가 아주 위험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정작 장본인들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위험한 것에 오래 노출되거나 익숙하다 보면 누구나 그 상황에 무신경·무감각해 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는 하지만 자국의 안녕이 걸린 안보적 '위험'에 무감각하다는 것은 국가 존립에 관한 문제이며 국민자긍에 관한 문제다.
60여년 전 국지전(6.25전쟁)으로는 유례가 드문 사상자를 내고도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나라, 휴전선 남북으로 100만명 규모의 병력이 실전(實戰)대치하고 있는 나라, 그들 뒤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최강국(G2)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 북핵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무핵(無核)의 한국, 선군(先軍) 정치로 무장한 세습 독재국가가 수시로 국지도발(천안함·연평도)을 일삼는 지역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남쪽에 친북(親北) 또는 종북(從北)이 더욱 기승부리는 '이상한 나라' 우리는 세계인들에 그렇게 비친 것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은 정부가 요청한 것보다 3000여억원을 삭감한 것으로 국방예산이 여러 예산항목 중에서 가장 삭감 폭이 크다. 이것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방 예산이 가장 만만한 대상이라는 안일한 안보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반드시 필수적인 해군기지(제주)하나 세우는 데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개도국은 물론 어떤 선진국이 이해할 수 있을까? 정권마다 북한 권력자들과 '악수'를 못해 안달이면서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남쪽 위정자들의 포퓰리즘에 세계 사람들이 의아심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셋째, 동북아의 역사를 잘 모르는 세계인 특히 개도국 사람들이 한국의 대일(對日)대중(對中)관계를 염려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국 일본과 몇 백~몇 천 년에 걸친 굴욕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으로서 중국과 일본을 경원하고 불신하며 민족적 거부감을 갖는 것이 때로 그들을 경멸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별 실리(實利) 없는 허장성세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까지 과거의 연장선상에 두는 우(愚)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 자신 식민의 역사를 체험한 약소국 개도국이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의 강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이 우리의 대중대일 외교를 주시하는 것은 곧 자신들의 강대국 외교의 교본으로 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무런 우회로나 퇴로 없이 그저 '성질 부려보는' 과시성 외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대가 바뀐 이상 우리가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일본이 우리 땅을 강점하는 따위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섣부른 결론이 경제적 식민화와 영토 분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재앙과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경제안보 외교에 관심을 표시할 만큼 우리는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우리만 모른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우리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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