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사 새로 쓴 연극배우 오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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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역사 새로 쓴 연극배우 오영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1.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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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주 초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오일남 역으로 출연한 원로 연극배우 오영수(1944년생)가 1월 9일(현지시각) 열린 제79회골든글로브 시상식(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호텔)에서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한국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영수의 수상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척당한 2020년 ‘기생충’, 2021년 ‘미나리’의 윤여정도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쾌거라 할만하다. 지난 해 제93회아카데미(일명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1947년생)에 이어 또다시 원로 연극배우가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 배우 샌드라 오가 골든글로브에서 연기상(2006년 여우조연상, 2019년 여우주연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국내 배우가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시아 배우 중엔 드라마 ‘쇼군’의 시마다 요코가 1981년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오징어 게임’은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2개 부문 수상은 불발됐다.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과 남우주연상·조연상 후보에 각각 오른 이정재와 오영수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오영수는 넷플릭스를 통해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며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고 전했다.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결국 나라와 문화를 뛰어넘어 세계무대에서 큰 감동과 여운을 만들어냈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 문화의 저력을 보여줬다”고도 했다.
배우 오영수는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 ‘갯마을’(1965)의 원작자인 소설가와 동명이인이기도 하다. 그것과 상관없이 아무래도 대중일반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 것으로 생각된다. ‘선덕여왕’(2009) 같은 드라마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등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연기인생 대부분을 연극배우로 꾸준히 활동해와서다.
연보에 따르면 오영수는 24살이던 1967년 극단 ‘광장’ 입단을 시작으로 연기 경력 56년,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며 백상예술대상·동아연극상·한국연극협회 남자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김명화 연극평론가는 “카리스마 있는 연극적인 외모에 선 굵은 연기부터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두루 소화하는 배우”(한국일보,2022.1.11.)라고 평했다. 
한편 앞에서 골든글로브 시상식 불참을 얘기했는데 “다른 일정과 시상식 참석에 따른 자가격리기간 등을 고려할 때 참석이 어렵다. 지난해부터 골든글로브가 인종차별 및 젠더 이슈 등으로 할리우드 전반에서 외면받고 있는 분위기도 고려했다”(한겨레, 2022.1.7.)는 게 이정재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 관계자 설명이다.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는 영화와 TV드라마로 나눠 시상하며 영화만 다루는 아카데미상, 방송 부문을 다루는 에미상과 함께 각 분야 양대 시상식으로 꼽힌다. 지난해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며 강력한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윤여정을 후보에서 제외시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기도 하다.
또한 골든글로브는 최근 백인 위주의 회원 구성과 성차별 논란, 불투명한 재정 관리에 따른 부정부패 의혹이 잇따라 불거져 구설에 올랐다. 톰 크루즈와 스칼릿 조핸슨 등이 공개 비판에 나선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협회는 지난해 시상식 이후 흑인 기자를 포함한 새 회원 21명을 영입하는 등 내부 재정비가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할리우드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할리우드 스타를 고객으로 둔 100여개 홍보대행사가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고, 주요 제작사들도 보이콧에 동참했다. 넷플릭스는 보이콧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지만,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해마다 시상식을 생중계한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 NBC가 중계 중단을 선언했고, 실제 올해 행사는 중계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을 두는 등 비영어권 작품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골든글로브이기에 작품상과 남우주(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만도 역사적인데,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했으니 한국 드라마사상 초유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지금 지난해 79세로 세상을 뜬 김학 수필가 추모문집 교정 중인데, 배우 오영수는 같은 나이에 드라마 역사를 새로 썼다. 국민에겐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준 쾌거다. 축하를 보낸다. 사실은 내 사위도 연극배우다. 모든 연극배우, 나아가 전 연기자들에겐 어떤 빛으로 작용할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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