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안보가 한몸인 시대, 새 국제무역 규범 놓치면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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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안보가 한몸인 시대, 새 국제무역 규범 놓치면 추락한다
  • 허성배
  • 승인 2022.06.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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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최근 국제 질서를 보면 경제와 안보가 서로 넘나들다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었다.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 코로나 사태 장기화, 디지털 경제 등으로 부상한 ‘경제 안보’가 기존의 다자 무역 체제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통상 외교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1947년 출범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이후 가장 큰 변화다.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5월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시 첫선을 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최신판이다.
우리나라도 ‘경제 안보’를 국가적 과제로 제시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제 안보는 경제와 교역이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외교·통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이다. 
지금 국제 사회에서 논의 중인 새 틀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디지털 경제, 노동, 환경, 사회간접자본, 조세, 부패 등을 포괄하고 있다. 단순한 교역을 넘어 국제 통상 외교 규범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작업이다. 우리의 경제 안보도 이 틀에 맞춰 전략과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럼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도적인 참여다. 국제 통상 외교 틀이 바뀌는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 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새로운 판 짜기와 국제 규범 수립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입장과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 
전 세계가 원점에서 리셋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입장을 반영한 분명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할 기회가 많이 생길 것이다.
둘째, 새로운 통상 외교 판짜기의 본질은 ‘융합’과 ‘통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존 국제 통상 협정이 영역별로 쪼개진 산발적 규정들을 안고 있었다면, 지금 진행 중인 논의는 하나의 가치 아래 전 영역을 담아내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민관 협력과 부처 간 공동 대응이 중요하다. 각종 칸막이를 뛰어넘는 통합적 사고와 대응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어느 부처가 무슨 권한을 갖고, 업무 분배를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각 부처 힘을 어떻게 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결국 컨트롤 타워인 대통령이 나서 이끌어야 한다.
셋째, 국제 통상 외교의 새 판을 짜는 것은 우리에게 위기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 수 있다. 예컨대 한정된 내수 시장의 굴레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기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은 내수 시장으로 우리는 그동안 상대국의 교역 제재에 일방적으로 당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롭게 열리는 디지털 시장은 국내외 구별이 없다. 국경선이 사라진다. 국내 시장이 세계 시장이고, 세계 시장이 국내 시장이 된다. 협소한 내수 시장의 족쇄에서 벗어날 기회다. 
세계적으로 통하는 디지털 콘텐츠와 하드웨어를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지만, 한국은 두 분야 모두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고, 한국은 반도체 생산·공급의 핵심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이 분야들이 융합하는 디지털 경제에서 앞서 나갈 호기(好機)를 맞은 셈이다.
그간 누가 상품을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지가 핵심이다. 경제적 효용성을 넘어 우리가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핵심 가치’에 연결된다. 
한국이 세계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지난 4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회 화상 연설에 국회의원 300명 중 50여 명만 참석한 것 같은 일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 대한 가치 중심 평가 및 재편 과정을 이해하고, 여기에 원칙을 세워 접근하는 것이 경제 안보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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