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불감증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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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불감증 세상
  • 허성배
  • 승인 2022.08.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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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거짓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게 인간 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자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잠들어서도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고 한다. 자기 합리화의 거짓말이 꿈으로 나타난 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대신 『인간 거짓말 하는 자』가 오히려 바른 이름이 아닌가도 싶다. 물론 거짓말을 『도둑의 씨앗』이라고만 몰아 붙일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 유쾌한 거짓말… 거짓말도 가지 가지다.
가령 오 헬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는 아름다운 거짓말의 본을 보여준다. 창밖의 나뭇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숨을 거두게 되리라고 믿는 환자 앞에 노 화가가 그려 붙인 잎새 하나는 차라리 구원의 상징이 었다.
비바람 속에 숨을 거두는 노 화가의 마지막 거짓말은 아름답고 장엄한 삶의 찬가로 들린다. 참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엄숙한 거짓 말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을 믿지 못하는 거짓 불감증 때문이다. “몇사람을 얼마동안 속일수는 있어도 계속해서 모든사람을 속일수 없다”는 진리처럼 인용되는 아브라함 링컨(Abrahm Lincoln) 대통령의 이말에 필자는 요즘 회의를 느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요 얼마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에서까지 재확인한 “천안함 폭침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믿지 못한다”는 국민의 여론이 20%나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천안함 진실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거짓 논란이 시도 때도없이 터져 나오는 거짓 주장에 이렇게 휘청거리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왜 이지경까지 왔을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거짓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풍조 때문이라고 본다. 서구에서는 남에게 “거짓말쟁이”라고 했다가는 사생결단을 각오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거짓말을 해도 아니면 그만이고 여기에다 면책 특권이란 두툼한 외투까지 입고 있어 일단 내지르고 보자는 한건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권의 비열한 행동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30년동안 우리나라 정치권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지난 총선과 대선 당시 공약(公約)은 실천할 수도 없는 공약(空約)으로 둔갑시켜 사기극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몰지각한 정치권의 행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거짓보다 더 무서운 거짓 불감증을 키워왔고 거짓불감증 사회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는 믿지못하는 불감증부터 심층 치료해야 할 것 같다.
중매장이의 허풍도 『뺨이 세대』의 정도에만 이르지 않는다면 젊음의 결합을 촉진하는 접착제로 묵인될 만하다. 두 젊은이가 만나 서로의 실존을 파악 하고 허허 웃어 버릴 수 있는 거짓말이라면 굳이 나무랄 것은 없다.
어떤 벌레는 사람의 손이 미치면 나무나 벽에서 뚝 떨어져 숨을 죽인다. 죽은척 누워 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의사반사(擬死反射) 몸짓이다. 생명의 보존을 위한 거짓말인 셈이다. 생명의 상실을 막고자 몸으로 실연하는 거짓말을 탓하는 건 잘못이다.
죄악의 거짓말, 그 가운데 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것은 역시 일부정치권의 거짓말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이 갖는 속성은 교활과 위선이다. 또한 그것은 국민을 속임으로써 그 엄청난 피해의 파급은 바로 온 국민에게 돌아 간다는 사실이다.
고달픈 일상의 윤활유와도 같은 피해 없고 즐거운 거짓말이 양념으로 곁들여지는 밝은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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