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놈의 이런 나라가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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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놈의 이런 나라가 다 있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1.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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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158명의 애먼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70일 넘게 지났다. 유가족들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갈 시점이라야 맞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공식적인 대통령 사과는커녕 주무 장관 사퇴조차 없는 등 기본적으로 선 수사 후 처벌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유가족들 화를 돋우고 있거나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구랍 10일 전체 희생자 158명 중 97명의 유족 170명이 모인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출범했다. 참사 발생 42일 만의 일이다. 유가족들은 창립 선언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온전한 추모와 이를 위한 철저한 진실 및 책임 규명을 목적으로 협의회를 발족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국회 국정조사와 성역 없는 수사, 유가족 소통 공간과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2차 가해 적극 대처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창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이상민을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보도에 따르면 유족들은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다. 몇몇 유족은 눈물을 흘리다가 실신해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구랍 11일 이상민 행안부장관 해임건의안이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야당 단독 처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고 이지한씨 아버지) 대표는 한겨레신문과의 통화에서 “해임건의안 통과 자체는 환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끼는 장관이라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겠지만 그래도 야당에서 이렇게 해 주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상민 행안부장관 해임건의안 국회 통과에 반발한 국민의힘 소속 이태원참사 국정조사위원들은 전원 사퇴했다. 희생자 고 서형주씨 누나 서이현씨는 “유족들이 요구했던 이 장관 파면 요구도 정쟁으로 몰아가니 국정조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국정조사 시작조차 이렇게 힘드니 쉬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보다 앞선 구랍 7일 18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도 출범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으로 파면과 함께 시급히 수사를 받아야 할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장관을 즉각 파면하고 국민의힘은 유가족·피해자 가슴에 대못을 박는 후안무치한 방패막이 행태를 즉각 중단하고 국정조사에 조속히 복귀하라”는 성명을 냈다.
구랍 14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 광장에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나비넥타이를 매거나 브이(V)자를 한 채 활짝 웃는 청년들, 교복 입은 학생의 앳된 모습이 분향소에 걸렸다. 이날 분향소에는 76명 희생자의 영정이 올려졌고, 공개를 원치 않는 다른 희생자들은 국화가 그려진 액자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구랍 16일 이태원참사 희생자 명복을 빌고 유족을 위로하는 49재와 추모제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하루종일 이어졌다. 가령 대한불교조계종은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위령제’를 봉행했다. 7개 종단으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이날 오후 유족과 시민대책회의가 합동분향소를 마련한 이태원 광장에서 합동추모식을 열었다.
보도(한겨레, 2022.12.17.)에 따르면 저녁 6시께부터는 참사 현장 근처인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일대에서 시민추모제가 열렸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연 추모제에는 희생자 가족과 친인척 및 지인, 종교·시민사회단체, 시민 등이 참여했다.
또 추모제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권 인사도 참석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측 인사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조계종 위령제에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압사당할 거 같아요.” 이날 저녁 6시 34분이 되자, 참사 당일 저녁 6시34분 압사 위험성을 처음 경찰에 알렸던 112 신고자의 음성이 추모제 현장에 재생됐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가장 안전한 곳에서 환생하기를 빈다”며 시민들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추모제에 참여한 시민들은 주최 쪽이 나눠준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외에도, ‘우는 거 말고 해줄 게 없네요’, ‘미안해요, 우리가 많이’, ‘함께 규명하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왜 이런 장면을 8년 전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다시 보는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하는지 먹먹한 가슴 가눌 길이 없다.
먹먹한 가슴은 ‘뭔놈의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하는 울분을 낳는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세월호 침몰 등 뜻하지 않은 참사는 어느 정권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책임지는 자세다. 애먼 생목숨 158명이 속절없이 사라졌는데, 누구 하나 책임진다며 물러나는 고위 당국자가 없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래서 되게 의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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