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귀농귀촌 이야기
상태바
나의 귀농귀촌 이야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4.13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년 전라북도 귀농·귀촌 우수사례 공모전 대상작 진안 진양우

저는 현재 전북 진안에서 조그마한 막걸리양조사업을 하고 있는 귀농인 진양우라고 합니다.
제가 도시인에서 농업인으로 변모해 막걸리사업을 진안 성수면에서 하게 된 이야기를 시간대순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5년전 2018년에는 꽤 규모가 있는 코스닥 상장회사에서 임원으로 재직했는데 어느날 회사가 매각이돼 얼떨결에 실업자 신분이 됐습니다. 임원은 임시직원이라고 했던데 제가 그 주인공이 되고보니 앞으로 먹고살 일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뭔가 인생 2막을 시작해야겠기에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 40대 후반이란 약점을 이겨내기위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전기기사, 소방설비기사, 위험물기능장등 기술분야 자격증만 7~8개 땄으나 막상 재취업하는 과정에서 예전에 받았던 급여와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큰 까닭에 재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배가 불렀고 덜 고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취업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한편으론 이민을 생각해 베트남, 태국, 그리고 호주등 한국인이 주로 찾은 국가에 대해 수개월간 많은 공부를 하면서 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즈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해외여행도 안되는 상황에서 이민은 오매불망, 이민의 꿈도 접어야했는데 작금 농업인이 돼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것을 생각하면 코로나가 날 살렸구나...라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재취업과 이민의 꿈이 닫힌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귀농귀촌한 농업인의 삶이었습니다. 당시 귀농이란 선택은 대답없는 차선책이자 현실도피성격이었기에 남들앞에선 농업이 미래다!라고 떠들면서 가슴속에선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귀농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렇다면 내가 농사를 지어야하나, 소를 키워야하나, 하우스농장을 해야하나... 막상 경험과 인맥은 전무한데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인생 2막을 맏기자니 이 또한 리스크가 크다라는 생각에, 엔지니어로 살아온 경험과 지식을 귀농후 접목해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다가 결국 ‘막걸리 양조사업’ 이라는 답을 얻게 됐습니다.
그후 약 8개월동안 전국의 900여개의 양조장중에서 업력이 충분하고 나름 맛에 대한 평이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내가 선택한 양조사업에 있어서의 기회요인을 찾고, 동시에 실패사례를 통해 리스크를 햇지하려는 시간을 가졌고 지금껏 답사한 양조장이 97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쯤되면 양조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어디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윤곽이 드러났고 그 결과 2021년말 제 고향인 전라북도 진안에 소재한 현 성수주조장을 인수하게 됐습니다.
양조장을 인수후 1년간 저의 질풍노도의 귀농생활이 버라이어티하게 이어졌습니다. 트랙터와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해 밭을 갈기도 했습니다. 도시에서의 상식이라면 장비와 기사를 불러 일을 맡기는 법이겠으나, 농촌 현장에서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부딪히면서 문제를 해결해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고 정주영 회장의 어록중 “해보긴 해봤어?”라는 말씀을 다시 되새기게 됐습니다.
또한 50대 도시아재들의 로망중 하나인 전원주택에서 대형견을 기르는 꿈의 일부라도 실현시키고자 인근 동물보호센터에서 유기견 4마리를 데려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등 귀농이후 저의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반면 행복은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지속되기에, 더 훌륭한 막걸리를 만듦에 있어서 부족함없는 노력이 병행됐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와 개인주택의 화장실공간을 제외하곤 온통 시음용 술뿐이며 기상부터 취침까지 쉬도 때도 없이 시음을 반복하면서 더 맛있는 막걸리를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인생2막은 알콜중독자로 마감되는건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노력은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다 했죠.

1년여간 부단히 연구개발한 성과를 보겠다고 세계적인 주류품평회 5곳에 우리가 만든 막걸리를 보냈고, 그 결과 3곳으로부터 금상, 은상, 동상이라는 믿지 못할 큰 상을 받게 됐습니다.
제가 상을 받았다는 자랑을 하기에 앞서서 나머지 2곳으로부터 상은커녕 출품조차 거절당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출품접수를 거부한 2곳의 주최측이 말하길 “술을 보내야지 왜 이상한 것을 보내느냐?”, “당신이 보낸 것은 술이라 말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통보였습니다.
일부이겠으나 세계적인 소믈리에들이 보기엔 침전물이 그득한 한국의 막걸리는 그들의 상식으론 술이 될 수 없었나 봅니다. 여기서 저는 막걸리에 대한 불편부당한 처우에 참담함과 동시에 내가 가야할 길이 보다 명확히 보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견 납득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전국의 양조장 백여곳을 답사하면서 그 곳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 공정을 어깨너머 살펴 보아하니 대다수 나이가 지긋하신 업주들은 온습도에 대한 치밀한 관리는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하물며 발효과학을 논하기엔 언감생심이었죠.
작년 2022년까지는 대내외적으로 분에 넘치는 상도, 칭찬도, 응원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성수주조장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세계인이 인정하는 K-막걸리를 만들기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할 것인지 고민하는 대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성수주조장에서 진행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는 3가지가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는 ‘김치스태디움’입니다. 일본 후쿠오카에는 일본 전역에서 내노라하는 라멘집 스타쉐프들이 모여 그들끼리 레이스를 벌이는 라멘스테디움이라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동기를 찾았습니다.
막걸리는 김치전과 환상의 궁합이고, 김치하면 한국이 종주국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에서 김치로 유명한 곳?이라고 물어보면 여러분은 어디가 떠오르나요?
없지요.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맛의 고장은 전주이고, 전주하면 음식이 대명사인데, 왜 하필 김치하면 전주가 떠오르질 않을까요?
저는 일본의 라멘스테디움이란 플랫폼이 라멘이란 음식을 세계적인 것으로 띄웠음에 그치지않고 훌륭한 관광산업의 효자상품이 된 것을 착안해, 대한민국에서 김치로 내노라할 청년 외식가를 뽑아 전주권내 전통시장의 한 곳을 선정해 그 곳에서 ‘김치스태디움’을 설립코자 합니다.
물론 일개 기업의 도전으론 너무나도 크고 어려운 비즈니스이기에, 저는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큰 도움과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일본이 집요하게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기무치”는 틀린 것이며, 우리의 김치가 바로 이 곳 전주에서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전주는 많은 관광 콘텐츠가 있습니다. 연간 1000만명 넘는 국내외 관광객이 집객하는 정말 대단한 관광도시가 됐습니다. 반면 그들이 이 곳 전주에 와서 소비하는 시간은 하루남짓, 한옥마을에서 반나절 보내고 풍년제과에서 초코파이를 산 후, 그래도 시간여유가 되는 경우 군산 이성당엘 가서 단팥빵을 사거나 진안 마이산등을 가보고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전북 전주에는 봄에는 국제영화의 거리에 인파가 흘러 넘치고, 가을에는 가맥축제에 역시 전국의 관광객이 모입니다. 이러한 각개 각소의 훌륭한 관광콘텐츠에 ‘김치스태디움’이 그 중심이 된다면, 이제 전주를 찾는 일천만명의 관광객은 먹고 마시고 즐기며 무박이 아닌 2박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전북과 전주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관광도시가 될 것입니다.
굴뚝산업과 제조업으로는 경쟁력과 한계에 봉착한 전북지역의 미래경쟁력은 관광산업에 있으며, 어디서도 보고 즐길 수 없는 막강한 콘텐츠가 뒷받침될 때 전북 그리고 전주는 세계인의 즐겨찾기 도시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주류대학을 설립하는 겁니다.
제가 양조장을 인수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양조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양조인을 양성하는 학교는 고사하고 전문 학원도 없으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주류시장은 나날이 커지며, 앞서 피력했듯 주류가 끌고가는 관광문화콘텐츠의 저력을 상기한다면 제대로 키운 양조인의 지적재산은 국가의 GDP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이 양조분야에 있어서 유럽과 어깨를 나란이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양조인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나 학교가 상당수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통을 계승하고 살려야 한다는 구호만 무성한 작금, 누군가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양조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학교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바로 제가 하려는 사업이며, 늦어도 2030년도부터는 첫 졸업자가 나와서 세계인이 감동하고 감탄하는 훌륭한 술이 빚어질 것입니다.
지금 설명드린 ‘김치스태디움’과 ‘양조학교설립’은 아직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지 못한 막걸리를 전 세계인이 즐겨찾은 모두의 술로 만들고자 하는 성수주조장의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반백년 살아오다 귀농한 이 곳 전라북도로부터 받아온 뜨거운 감동은 제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명확히 보여주었으며, 저의 짧은 지식과 경륜일망정이를 십분 살려서 세계인이 감탄하는 술이 다름아닌 막걸리임을 만들어 내는데 인생 2막을 걸겠습니다.
살면서 행복은 성적순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공부열심히해서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은 ‘검사’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닙니다. “행복은 귀농순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