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베짱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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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베짱이를 꿈꾸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4.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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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전라북도 귀농·귀촌 우수사례 공모전 우수상작 남원 고재대

Prologue. 상추는 이렇게 키우는 겁니다!
“겨울 상추는 여름 상추에 비해서 양액의 EC를 조금 높여서 줘야 합니다” 몇 일전 지인의 소개로 저희 농장에 찾아온 초보 농사꾼에게 상추에 대해 나눈 이야기 중 일부이다. 

고재대, 나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 제대로 된 상추 농사꾼이 되기 위해 여러 기관들을 찾아가 공식적으로 공부한 시간만 무려 1800시간이며, 선진 농가를 방문해서 배운 시간까지 계산을 한다면 무려 2000시간이 넘을 것 같다. 농사꾼이 되기 위해 공부한 시간이 초·중·고·대학교 까지 운동부 생활을 하면서 공부한 시간들 보다 많다. 그만큼 난 농사에 진심이었고, 지금도 진심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나의 성장통과 같은 날들을 지난날들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수기를 작성해 본다. 

episode 01. 나는야, 맨땅에 헤딩왕~!
그날따라 아이들의 기합소리는 여느 때보다도 우렁찼고, 품세는 정갈했으며, 표정은 다부졌다. 2019년 가을 그날은 도장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 나이 5살부터 시작한 태권도였다. 익숙했던 일들을 뒤로하는 아쉬움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태권도장을 나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하다. 그해 겨울 코로나19가 발생했고, 문을 닫는 태권도장이 속출했으니 말이다. 
나의 귀농은 조금은 무모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 스스로 결단을 내릴 수 없었기에 연고도 없고 그렇다고 빌어먹을 터전도 마련하지 않은 채 온가족을 데리고 내려와 버렸다. 그 당시 나의 가족 구성원은 나와 동갑내기 아내와 6살, 4살 두 아들이었다. 내려오기 전 알아본 귀농의 집들은 1~2인이 머물 수 있는 작은 집들이였는데, 다행이 마을 회관을 리모델링해서 조금은 넓은 귀농인의 집이 비어있었고,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그 기간 동안 정착할 집과 토지를 지역 내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마을 이장님과 계약을 하고 내려왔다.
귀농의 집으로 이사 온 첫날, 마을 할머니들께서 아이들 소리가 난다며 찾아오셨다. 그때 당시 우리 아이들이 마을에서 유일한 꼬마 녀석들 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이사 온 첫날부터 밖으로 틔인 우리집 마당은 할머니들의 오며가며 쉬는 쉼터가 됐다. 마을 주민들과 친해지고 싶어 주말 점심때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마을회관에 가서 점심 심부름도 하고 점심도 얻어먹으며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 분들이 우리가 필요하면 밭도 빌려주시겠다고 하고, 씨앗도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해주시고, 이장님께서는 산 아래 넓은 밭을 빌려 주셨는데 고구마를 한번 심어보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막막함과 농사에“농”자도 모르면서 어찌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우리는 작은 밭 정도의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을 한 것은 아이었다. 제대로 된 농사를 짓고 싶어 찾아간 곳은 농민상담소였다. 농사지을 작물 선택에 조언을 얻고자 찾아간 곳이었고 그곳에서 권해주신 작물은 상추였다. 초기 자본이 별로 없는 귀농인 들에게 정착을 위해서 추천하는 작물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상추라는 작물은 수확까지의 생육기간이 짧아 씨를 뿌리고 약 2달 만에 수확을 시작해서 꾸준하게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작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20년 넘게 상추농사를 짓고 계시는 상추작목반 회장님의 전화번호를 주셨고, 그날 바로 연락을 드려 찾아뵈었다. 
이렇게 나와 상추의 인연은 시작됐다. 음료수 한 박스 들고 찾아 뵌 선생님의 첫인상은 60대 초반의 얼굴은 가을볕에 그을려 있었고, 눈은 부리부리하며 고집은 굉장히 세어 보이는 분이셨다. 선생님께 우리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고, 선생님께서는 연고도 없이 농사를 지으러 왔다는 안타까움과 젊은 나이에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우리에게 대견함을 느끼면서 선생님의 상추 하우스 옆에 비어있는 200평 비닐하우스를 아주 흔쾌히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게다가 농사짓는 법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꼼꼼하게 가르쳐 주셨다. 단, 선생님의 조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게을리 하지 않고, 절대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배우든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이 맞는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선생님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항상 상추농사에 건성이라는 것은 없었다. 상추하우스에 풀 한포기 없이 바닥은 항상 깨끗했고, 수확한 상추를 상자에 넣으실 때도 상추들이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 이유에서 인지 농산물 공판장에서 선생님의 상추 경매가는 항상 다른 농가들 보다 높았다. 그렇게 일타 농사강사 선생님께 상추 농사를 배우며 여름이 올 때까지 한 작기 농사를 지었다. 
아내와 함께 농사일을 시작 했지만, 시골의 밤은 참으로 길었는지, 우리에게 축복같이 셋째 딸이 와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들었던 조금의 막막했던 마음이 미안해질 정도로 우리 딸이 없었으면 어쩌나 싶다. 하우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면 대면대면한 아들들 사이로 저 멀리서부터 두 팔 벌려 맞이해주는 건 우리 막내 딸 뿐이니 말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상추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저녁에 헤드라이터를 켜면서까지 일을 했지만, 혼자서 200평 하우스를 감당하기가 버거워졌다. 봄 상추 가격은 1년 중 가장 값이 좋지 않았기에 인력을 써서 상추 수확을 하는 것은 적자였다. 하우스 안에 상추 3두둑 중 1두둑은 포기를 하고 내가 혼자서 감당 할 수 있는 만큼만 수확해 출하를 했다. 상추를 오늘 공판장에 출하를 하면 내일 통장에 수수료를 제하고 입금이 됐다. 나의 노력의 결과가 통장내역에 고스란히 남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4식구가 아니 이제는 5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그러던 중 귀농인의 모임에서 나의 은인과 같은 형님을 만나게 됐다. 지금도 형님께 명절마다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있다. 형님은 귀농 후 표고버섯을 하고 계셨고, 청년농부들의 모임에 저를 초대해 주셨다. 그곳에서 새로운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던 나에게 우물 밖 탈출을 시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때 선생님과 함께 상추작목반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은 60대 이었고, 20농가가 채 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줄고 있는 상황 이었다. 그런 것에 반해 지금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의 재배단지 규모는 약 250농가가 상추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작목반도 많이 활성화 돼 있다고 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농부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청년농부들의 모임에서 상추 농사를 짓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났고, 많은 조언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터전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선생님은 아직도 내가 궁금하면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시고, 나도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있다. 지금도 어쩌다가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가끔 칭찬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귀농해서 도망안가고 부지런하게 농사 잘 짓는다고 나의 칭찬을 하고 다니시는 선생님 덕분 이였던 것이다. 나의 첫 농사 스승님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상 열심히 살아 야겠다고 매일을 다짐한다.  

episode 02. 나는야, 박카스를 든 흑호미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의 모험은 시작됐습니다. 땅도 마련해주고, 매일 와서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시고 조언도 해주셨던 스승님은 이제 없다. 오롯이 나 혼자서 땅도 마련하고 농사짓는 법도 배워야 한다. 
감사하게도 그해 2020년 청년창업농에 선정이 돼 정착지원금과 저리로 토지를 구입할 수 있어 자금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었지만, 이곳에서 나는 사과밭 김씨의 아들도, 포도밭 양씨의 아들도 아닌 외지인 고재대 였다. 
청년농부들의 모인에서 만난 나의 동갑내기 친구는 기꺼이 나의 멘토가 돼주었고, 그의 아버지의 작은 밭은 내어주며 나의 독립 후 첫 상추농사가 시작됐다. 군대생활과도 같았던 운동부 생활을 10년을 넘게 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실력도, 강인한 체력도 아닌 ‘인사성’ 때문이었다. 인사 잘하는 녀석은 어디서도 예쁨을 받는다가 나의 아버지의 철학이셨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외지인 고씨를 벗어나기 위해 난 참 내가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귀농하고 구입한 나의 애마 파란색 포터트럭에는 항상 박카스를 가지고 다녔다. 만나는 어르신들 마다 박카스를 내밀며 인사를 하고, 좋은 땅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사하고 부탁을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볕은 너무 뜨거웠고, 국지성 호우로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는 바람에 노지 상추에 구멍이 생겨 성한 상추를 수확 해 출하하는 날이 며칠이 되지 않았다. 비탈진 노지라서 앉아서 상추를 수확하기 힘들었고, 비가 오면 작업한 상추 상자를 둘 곳이 없어 간이로 만든 보관 장소는 물로 흠뻑 젖기 일쑤였다. 영농상황은 열악했고 귀농 후 약 1년 동안은 지출만 있을 뿐 수익은 없어 집에 한 푼도 가져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슬펐던 건 나와 함께 농사를 지어보자고 꿈을 꾸셨던 나의 아버지, 손녀딸을 안아보시지도 못하고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나셨다. ‘화불단행’이라 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 다더니... 그 해 여름은 귀농 후 너무도 빠르게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런 나를 지탱해준 건 만삭의 몸으로도 도서관 일을 하며 나를 위로해주는 나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상추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친구들 재배왕(세명의 이름을 따서 만든 모임 이름이다) 이었다. 지금도 재배왕은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하고 배우자의 나이들도 다 비슷해 가끔 여행도 같이 다니고 모임도 자주 하고 있다. 

그때 난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그해 가을 수확이 끝난 어느 늦은 가을날 나의 운명의 땅이 나타났다. 시골에서 땅을 만나는 건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 인연이 돼야 한다고들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흘겨듣기 마련인데 몇 번의 거래약속이 오고 갔던 땅들이 지나가고 그렇게 지금의 나의 땅이 나에게 왔다. 나도 이제 뜨거운 볕을 피할 수 있고, 한없이 쏟아지던 폭우를 막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청년창업농에서 저리로 대출을 해 토지 구입을 하고, 단동 시설 하우스 3동을 지었다. 이건 마치 지하방에서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한 듯한 뿌듯함이었다. 

episode 03. 재대로 팜의 고재대
이렇게 드디어 고재대 나의 농장 재대로 팜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가 잘 먹고 잘살고 끝이라면 수기작성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제대로 된 농부가 되기 위한 성장 통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든 작물에는 저마다 다른 품종이 있듯이, 상추라고 해서 다 같은 상추가 아니라 적치마, 청치마, 포기찹, 포기찹 골드 등이 있다. 그중 내가 재배한 것은 포기찹 골드였다. 이 지역 상추는 해발이 높아 상추 재배지로 적격인데 특히 여름 기온이 다른 곳에 비해 5도 정도 낮아 공판장 경매가가 15년 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빛을 많이 받아야 상추에 붉은 빛이 감돌아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얇은 것보다는 도톰한 상추가 맛이 좋다.

대파와 냉이를 심었던 땅이라서 상추를 처음으로 심었던지라 상추 농사 작황을 아주 성공적 이였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배운 데로 열심히 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상추는 농사를 잘 짓기만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한장 한장씩 상추 잎을 따줄 인력이 필요했는데, 그 해 2019년 겨울에 발발한 코로나19는 2020년에는 더욱 심해져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가 힘든 상황에서 외국인 인력에 의존했던 농가에 큰 타격이 온 것이다. 250이 넘는 상추농가들이 인력 수급이 되지 않아, 자신들의 상추밭에 일을 해주러 안았다며 동네사람들끼리 싸움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마저도 주변 마을에서 상추를 따주실 분을 구하지 못하면 새벽 5시에 출발해 30~40분이나 되는 거리로 인부들을 출퇴근 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추 값이 좋은 여름에는 충분히 감수 할 수 있는 상황 이였지만, 여름을 제외하고는 기름 값도 안 나오는 상황이 됐다. 
처음 시설하우스 토경 3동에서 상추를 지으면서 손익계산을 따져 보니 인건비와 수수료, 밥값, 간식비, 농약비 등등을 제하면 나에게 남는 건 일반 말단 회사원의 월급 수준보다 낮았다. 난 갚아야할 대출금도 있었고, 건사해야 할 아이들도 셋이나 됐다. 여기서 안주할 수도 없고 안주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의 해결책으로 내가 알아본 것은 정부지원 사업들의 지원을 받아 시설을 늘려 수확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 청년농부들에게 많은 지원들을 해주고 있다. 매년 농림 분야 지원사업의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다음 해 1월부터 지원신청이 가능하다.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0% 전액을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많으니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미리 사전에 알아보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다. 지원사업을 받기 위해서는 요구하는 조건들을 보면 교육시간이나 교육 수료증이 있는 경우가 많고 기관이나 단체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받을 수 있는 경우도 많으니 시간을 투자해 꼭 자세하게 알아보아야 한다.
감사하게도 지원사업에 많은 도전을 했고, 좋은 결과들이 많았다. 이런 결과들에 우리 세아이들도 한 몫을 했는데, 그건 지원사업 중 다자녀 가산점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골의 밤은 길고 다자녀의 혜택은 많다. 참고 하시길 바란다.

토경상추를 재배하면 노동력이 과중되고 병해충 발생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들도 많은 문제가 된다. 토경 재배를 하던 여름날 새 작기 준비를 위해 땅을 갈아야 했다. 날은 더웠고 시설 하우스 안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관리기에 연료주입을 하기 위해 연료 캡을 여는 순간 휘발성 기름이 폭발해 얼굴을 덮친 것이다. 119를 부를 겨를도 없이 얼굴에 물을 부으며 바로 병원 응급실로 출발했다. 다행이도 보호안경을 쓰고 있어 눈이 다치진 않았지만,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와 손에 큰 화상을 입게 됐다. 병원을 여러 차례 다니며 얼굴은 껍질이 볏겨지고 다시 새살이 돋아 지금은 괜찮아 졌다. 그 후 이제는 일을 시작해 볼까 싶었는데, 다시 바닥 고랑을 만들 던 주에 허리를 다쳐 119를 부르는 신세가 됐다. 내 생에 처음으로 타보는 응급차였다. 두 번의 큰 고비를 넘기고 고비였지만, 토경재배는 단점들이 너무 많았다. 우선, 매 작기마다 땅을 경운하고 다시 고랑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으로, 만든 고랑에 비닐을 씌우고, 다음으로 상추 모종을 심고, 수확을 하기까지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도 없이 해야 해서 무릎 연골이 남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앵약 재배로 전환해야 하는 큰 이유는 토경 재배시 발생하는 연작의 피해가 심해지면 수확량이 점점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같은 노동력과 비용이 발생하지만 수확량이 감소한다면 이것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때이다. 
한 해 농사를 지어 나온 수익과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시설하우스를 2동 더 늘리고 양액시설로 전환했다. 더 이상 허리를 다쳐 119에 실려 갈 일도, 위험한 농기계 사용에서 벗어나 다칠 일도 사라진 것이다. 
이제 한시름 놨다고 생각했지만, 시설 전환 후 나의 첫 작기는 대 실패였다. 작물이 뿌리가 자라지 않아, 생육을 멈춘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 작물을 가지고 가서 토양 검사의뢰도 해보고, 수질검사도 받아보고, 농작물 해충방제센터에서도 너무도 의례적인 일이라서 박사님 세분이서 농장에 방문 해 주셨지만 그 원인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작기다 다 끝나고서야 공급했던 배양액의 농도 문제와 원수 배관의 누수를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작물 수확을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도 문제가 있었지만, 실패라는 두려움에 다음 작기를 시작하는 마음이 너무 찹찹했고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함께 상추농사를 지으면서 결성한 영농조합의 조합원 분들께서 매일 같이 와서 확인해주시고 걱정해주셔서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이겨낼 수 있었고, 그 다음 작기는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본 가을 하늘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이름값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나를 대견하게 봐주실 것만 같았다.

episode 04. 남원에 스며들다.
우리 셋째의 고향은 남원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도 남원 사투리를 제법 쓴다. 가끔 대구에서 어머니가 오시면 아이들의 오고가는 대화 속 남원 사투리를 듣고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나는 이제 남원인 이다. 남원시 청년협의체 임원으로도 활동도 했고, 남원의 발전을 위해 결성된 많은 모임에 참여해 지역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청년 농부들의 모임에 지금까지 함께 하며 농사뿐만 아니라 지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하고 있다. 지역 축제에 힘틀 보태 함께 진행하기도 하고,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농가에 모두 함께 힘을 보태주기도 하며 모임을 운영해 가고 있다. 또한 내가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기관에서 주최하는 귀농을 준비하는 예비 귀농인 들에게 맨땅에 헤딩한 나의 귀농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 하고, 청년창업농을 지원하는 예비 청년창업농에게 기선정자로써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주변의 상추 재배하는 분들과 영농조합도 만들어 어떻게 하면 상추를 더 잘 재배하고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며 조합을 결성했다. 매일 따는 잎상추 대신 포기채로 수확하는 샐러드 상추로 전환 해 재배를 시작했고, 처음 수확한 작물은 남원시 소외계층 관련 기관과 가정에 나눔을 시행했다. 이렇듯 나는 남원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 

episode 05. 지리산 베짱이를 꿈꾸며...
귀농 4년차 온가족을 데리고 무작정 이사를 한 후, 쉬지 않고 움직여 여기까지 온 듯하다. 나의 성장통과 같은 귀농 정착기를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은 했지만 이렇게 한자한자 적다 보니 나를 다시 다잡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처음 선뜻 나에게 비닐 하우스를 내어주신 선생님, 밭을 같이 일궈주고 함께 해준 친구들, 운명같이 나에게 온 땅, 점점 발전하면서 걸어온 날들에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열심히 포기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준 나 스스로에게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올 해도 2년 동안 열심히 스마트팜 교육을 받고, 노력한 결과 스마트팜패키지 지원사업에 선정이 돼 5연동 시설하우스로 증축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나의 계획은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해 농산물 값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중간 상인이 아닌 농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의 노력의 결과 값을 제대로 받는 것~!! 그것이 나의 앞으로의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많은 산들을 넘어야 할 것이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은 내가 귀농 후 뼈저리게 공감하는 말이다. 산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하면 어느덧 더 큰 산이 여봐란 듯이 내 앞에 버티고 서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조금이나마 이겨내 보고자 택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에 올라가 정상 너머의 산을 미리 보고 오는 것이다. 뒤에 산은 앞에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정상에 도전하고 올라야만 또 다시 오를 수 있는 산이 보이는 것이다. 산에 오르는 내내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곱씹고 곱씹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올라와 있고, 그러다 보면 내려가는 길에 내 마음은 한결 수월해져 있다. 또 한 번 부딪쳐 볼 에너지를 충전돼 있는 것이다. 

나의 꿈은 지리산 베짱이이다. 놀고먹기만 하는 베짱이가 아니라 팜라벨(farm-life balance :농사와 삶의 균형)을 즐기는 베짱이가 되는 것이다. 농사도 자동제어 시트템을 도입하고 이용하면 조금은 수월하게 작물을 재배 할 수 있게 됐다. 온도, 습도, 기후조건에 따라서 창문의 열고 닫힘이 가능해졌고, 자동 수급시스템으로 정해진 시간에 양분과 수분을 공급할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작은 스마트폰 안에서 제어가 가능해 졌으며, 카메라 화면으로 작동 유무를 확인 할 수도 있다. 물론 최적의 데이터를 찾고 적용하는 큰 숙제가 남아 있지만 나에게 잠시 숨을 돌려 아내와의 오븟한 데이트도 즐기고, 아이들과 1박 2일 여행 정도를 즐길 수 있는 팜라벨을 즐기는 베짱이가 될 수 있는 여유를 줄 수는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귀농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농사도 수많은 직업들 중에 하나이며, 잘하고 싶으면 그 일에 진심이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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