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기도, 100년만의 쾌거…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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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의 기도, 100년만의 쾌거…간도
  • 투데이안
  • 승인 2009.09.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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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무얼까? ‘빛입니다.’ 아마도 절대 다수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며 가장 막강한 파워를 지닌 빛.

그러나 빛보다 빠른 게 있다. 바로 ‘염(念)’이란 놈이다. 빛보다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염. 인간의 상념을 볼록렌즈처럼 한 점으로 모으는 것이 바로 기도다. 기도는 하늘과 통하는 길이다.

지난 7월7일부터 13분의 개국 열성조를 모시고 민족혼을 불어넣는 구명시식을 하고 있다. 그동안 가족중심의 기도를 벗어난 국가와 민족을 향한 기도였다. 구명시식을 올리기 전, 이기도가 하늘에 닿으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도 어떤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되었다.

구명시식이 딱 절반이 되는 8월25일, 한 사람이 구명시식에 찾아왔다. 민족회의 집행부 K씨였다. 그는 통일준비정부 일원으로서 나와 함께 ‘간도협약 원천무효 및 간도반환 소송’서류를 접수시키러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를 무대 위로 불러 기도 동참자에게 인사시키려는 순간, 별안간 휴대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리는 게 아닌가. 입장시에 진동, 묵음조차 금하고 배터리까지 분리하도록 입구에서부터 확인시키고, 다시 한 번 시작 전에 철저히 확인하여 이중삼중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터였다.

부주의를 책하듯, 150여명의 시선에 일제히 벨 소리 나는 쪽으로 모아졌다. K씨 휴대전화였다. K씨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입구에서 안내자 앞에서 분명히 전원을 끄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파워 버튼을 눌렀으나 도무지 작동을 하지 않았다. 무심한 벨은 계속 울려댔다. 할 수 없이 동행했던 일행이 전화기를 가지고 극장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22년 구명시식 중에 종종 코드가 빠진 전화기 벨이 울린 적이 있었기에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사를 앞둔 지금, 예사롭지 않은 신호였다. 무슨 징조일까. 나중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피치 못하게 내가 국제사법재판소로 떠나지 못하게 되면서,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 김영수 국장을 부대표로 K대표로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떠나는 김 국장을 불러 ‘위법망구(違法忘軀)’라는 글자를 쓰고, 그 위에 혈서로 인장을 찍었다. 헤이그로 가는 이준 열사의 심정으로 가라는 징표였다.

K대표와 김 국장은 위법망구 4글자를 품고 8월29일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각오는 비장했지만, 처음 예상과는 많이 빗나간 출발이었다. 민족회의 간부, 간도 찾기에 뜻있는 분들과 제소장을 작성한 미국동포 폴 김을 비롯하여 태권도 연맹 간부들이 대거 동참하게 돼 있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 불참하여 달랑 두 명만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린 두 사람은 막막했다.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영어 능통자가 없었기에 망연자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준 열사 또한 이러한 심정으로 헤이그로 달려갔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1시간을 헤맨 끝에 헤이그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때부터 불가사의한 일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헤이그 시내 지리를 전혀 몰랐던 일행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지 정확한 정보를 주는 교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송 문건을 고치고 접수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교민도 있었다.

특히 한 여인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이준 열사가 순국한 호텔을 개조한 이준열사기념 박물관에서 묵념을 하고 돌아서는데 김 국장을 찾는다는 현지 전화가 온 것이었다. 네덜란드에 전혀 연고가 없는 김 국장으로서는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작년에 구명시식을 올린 G라는 교민이었다. 열렬한 내 팬인 그녀가 매일 인터넷으로 나의 근황을 주시하다가, 내가 네덜란드에 온다는 소식을 읽고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법사님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고,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말도 안통하고 지리도 몰라 도보로 이동하던 차였는데, 현지인이 손수 운전까지 하며 기꺼이 발 노릇을 자청했다. 더욱이 가장 아쉬웠던 통역을 해결할 수 있어 무엇보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어쩌면 그렇게 콕 집어 적재적소에 도움을 주는 분이 나타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난제는 역시 제소장 접수였다.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십니다. 하지만 접수는 안 될 겁니다. UN에 가입한 국가여야만 하거든요.”
만나는 분마다 격려를 해주었지만 하나같이 불가능하다고 걱정을 해주었다. 익히 알고 대책을 마련한 터였지만, 막상 굳게 잠긴 국제사법재판소 철문을 보니 더욱 암담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다시 이준 열사를 생각했다. 박물관 앞에서 ‘위법망구’를 펼치고 의지를 모았다. 매일 국제사법재판소 정문에서 성명서를 읽고 작은 현수막, 태극기를 펼치고 간도협약 무효와 간도 반환을 요구했다. 냉정한 국제법을 다루는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는 부질없는 짓처럼 보였지만, 결연한 각오는 하늘에 보내는 염원이었다.

드디어 9월1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서류를 들고 국제사법재판소 경비실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경비원들은 냉랭했다. 약속이 되었는지 묻고는, 서류접수는 우편으로 하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중요한 서류라서 직접 접수해야한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G씨는 주부였기에 정치, 법률 용어에 서툴고, 일행이 설명하는 민족주권과 국가주권의 개념을 통역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결정적인 도움이 될 줄이야.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결연한 기세에 주눅이 든 경비원과 대치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안으로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아냈다.

“왜 한국 대사관에서 오지 않고, 직접 왔습니까?"

국제사법재판소의 행정처 직원이 날카롭게 물었다. 국가가 아니라 접수가 안 된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국가의 대표가 아니라 남북과 해외 동포들이 구성한 민족 연합체의 대표다. 민족회의에서 구성한 통일준비정부 대표. 그래서 한국 대사관과는 별개다.”

“민족회의는 UN에 가입되어 있는가?”

“민족회의 구성원인 남한과 북한은 이미 UN에 가입되어있다. 우리는 국가주권이 아닌, 하나의 민족에 두 개의 국가로 나뉜 남북의 민족주권을 행사하러 온 것이다.”

일행의 결연한 답변에 담당자는 주저 없이 접수증에 접수 서명을 했다. 100년 동안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 장의 서류였다.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본래 네덜란드의 7~9월초까지는 우기여서 폭우가 잦은데, 묘하게도 6일 동안 비가 없다가 마지막 날에 몰아친 것이었다. 큰 일이 있을 적마다 비가 내리더니 역시 이번에도 그 징크스를 깨진 못했다.

거사를 마친 일행의 비행기는 암스테르담 공항을 힘차게 이륙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비구름을 뚫고 오르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석양에 비친 비행기의 그림자가 구름에 은막처럼 비춰졌는데, 오색무지개가 그림자가 둘러싸고는 쫒아오는 게 아닌가. 비행기가 축하 꽃다발처럼 둥근 무지개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민족사 100년만의 쾌거를 달성하고 돌아온 두 사람이 다시 구명시식 무대 위에서 귀국 보고를 했다. K씨는 감회를 털어놓았다.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절대 접수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법사님의 강력한 염력과 후암 여러분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기도의 덕택입니다.”

김 국장은 불가사의한 경험담을 열거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등을 떠밀고 안내해 주어서, 단지 저는 심부름하는 집배원 같았습니다. 지식이 많고 영어가 유창했다면 그 쪽에 설득 당했을 겁니다. 말싸움이 아니라 기싸움에서 이긴 겁니다. 단순하라는 법사님 말씀을 실감했습니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나는 일찍이 8월경에 경천동지할 일이 생긴다고 말한 바 있다. 큰 별 중에 하나인 김대중 대통령 서거가 있었고, 북한을 다녀온 현정은 회장으로부터 놀라운 소식들이 쏟아졌다. 모두 국가에 경천동지한 일이지만,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간도반환소송 서류를 접수한 것이야말로 인간의 염(念)과 하늘이 같이한 경천동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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