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앞에는 그무엇도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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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앞에는 그무엇도 두려움이 없다.
  • 서윤배 기자
  • 승인 2011.12.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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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양심을 가져라!
우리는 이 시대를 불신의 시대라 부르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불신의 사회라고 평한다. 피차에 신의가 없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일도 제대로 안되며 언제나 구름이 낀 날씨 같아서 개인의 얼굴에는 기쁜 빛이 없고 그러한 인간들이 모인 사회라 명랑한 인상을 느끼지 못한다.

워싱턴도 최고의 정책은 ‘신의’라고 말했다. 남을 믿지 못하고 배신하는 것 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내가 남을 믿지 못하니 남도 나를 믿지 못할게 아닌가? 모든 잘못이 감춰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인도의 간디는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서양의 속담을 반박한 일이 있었다.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니까 사람이 정직해야 한다면,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에는 정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하면서, 사람이란 나면서부터 정직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정직한 것이 당연하다고 역설하였다. 역시 생각이 깊은 사람의 풀이라고 느껴진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직이 밥먹여 주냐?”식이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하는가 하면 오히려 ‘바보’로 여긴다. 엄밀하게 따지면, 유능하다 또는 무능하다 하는 것이 한 개인의 책임일 수 없다. 어려서부터 IQ가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둔한 열등생이라 하더라도 모든 일을 정직하게 할 수 있고, 정직하냐 정직하지 못하냐 하는 한 가지 문제만은 그 한 개인의 책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기야 철두철미 정직한 사회가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소위 선진사회라는 데는 조금만 흑막이 나타나도 여론의 힘이 그 배후를 대개 파헤치게 마련이지마는, 우리처럼 상하 좌우가 얽히고 섥히어서 도저히 풀어 볼 길이 없는 사회는, 그런 생리가 몸에 배어 사람 사는 세상은 으레 그런 모양이다 하고 채념해 버리기 때문에 그 흑막이 점점 더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서로간 불신의 풍조가 나날이 심화되는 것같다.
그래서 말이지만 요즘 우리사회에는 비양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최근에만도 살인, 방화, 성추행등 각종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그뿐인가 남을 부질없이 매도하거나 남들을 필요이상으로 경원시하는 풍조도 만만치 않다.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비겁자로 모는 풍조는 우리모두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극히 바람직스럽지 못한 풍조이다.
하지만 “정직한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서양의 속담이 있다. 얼마나 훌륭한 말인가? 문제는 양심에 달린 것이다. 한 개인이나 한 사회가 양심이 있으면 살고 양심이 없으면 죽는다. 양심은 정직하라고 명령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는 것은 남몰래 양심을 지켜가며, 정의를 위해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 어느구석에 더러는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겁한 사람은 일하기 전부터 결과를 따지고, 언제나 사람들의 칭찬만을 기다린다. 비겁한 겁쟁이들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며 스스로를 낮춘다. 하지만 비겁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자신의 가면이 벗겨져 그들의 본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며 솔직하고 떳떳하다.
명랑한 사회란 흑막과 거짓이 없는 사회다. 흑막의 선입견이 없는 사회란 상호 신뢰하는 사회다. 그렇다면 불신이라는 고질을 고치는 약이 단 한 가지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다 정직하기에 힘쓰면 된다. 그것만이 흑막없는 명랑한 사회를 이룩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비단 나만의 소원이 아니라 우리 온 겨례의 소원이라고 확신한다.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회가 그립다.우리는 내일을 향하는 진실되고 허황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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