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작가들, 형식미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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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작가들, 형식미 갖춰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12.06.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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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경숙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판매가 20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순수소설인 ‘엄마를 부탁해’의 200만 부 돌파는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출판사측 설명이다. 1990년대 이후 200만 부 넘게 팔린 소설은 1996년 ‘아버지’(김정현), 2000년 ‘가시고기’(조창인) 정도로 알려졌다.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장점이나 미덕들이야 그 동안 차고 넘쳐 재론은 별 의미가 없을 듯싶다. ‘엄마를 부탁해’가 ‘볼·매’(볼수록 매력)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무려 4페이지를 훌쩍 넘는 긴 문단 등에 대한 이야길 해볼까 한다.

심지어 신경숙의 또 다른 작품 ‘숨어있는 눈’은 단편소설인데, 한 편 전체가 고작 5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찌 숨이 턱 막히지 않겠는가? 혹 베스트작가 신경숙쯤 되면 긴 문단도 하나의 독자적 특징으로 대접받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왕착각’이다.

아다시피 문단은 크게 내용문단과 형식문단으로 나뉜다. 내용문단은 글자 그대로 내용에 맞춰 문단을 나누는 것이다. 그와 달리 형식문단은 첫 칸 비우기에 따라 문단을 구분한다.

내용에 따라 하다 보면 자칫 그렇게 길어질 수 있기에 나는 모든 작가들에게 의도적으로 형식문단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때 한 문단의 길이는 보통 수필의 경우 4~5줄이 좋다. 이것이 어찌 수필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소설 전체가 호흡이 긴 점을 감안, 수필의 경우를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단행본 기준 1페이지를 넘기는 너무 긴 문단은 곤란하다.

물론 중간중간 대화가 끼어있는 경우라면 그것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다. 부득이 줄이 늘거나 줄어들 수 있지만, 그렇게 쓰다 보면 조만간 맞춤형의 좋은 수필 또는 소설의 작품이 된다.

문단의 중요성을 애써 강조하는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다. 우선 너무 긴 문단은 독자들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숨이 막히면서까지 그 글을 끝까지 읽을 독자는 그리 흔치 않다.

또한 일정 규격을 벗어난 들쭉날쭉(예컨대 어느 것은 두 줄, 어떤 문단은 수 페이지) 문단은 독자를 불안하게 한다. 불안에 휩싸인 독자는 모처럼 작심하고 독서하려던 의지를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무릇 글쓰기에서 정제된 문단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문단은 글쓴이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주장 등을 탁탁 끊어서 정리할 줄 아는 능력의 바로미터이다. 그런 점에서 정제된 문단은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형식미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하긴 정제 안된 문단이 비단 신경숙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중 ‘완득이’(김려령),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정도만 너무 긴 문단으로부터 자유로울 뿐이다.

내가 읽은 ‘허수아비춤’·‘은교’·‘7년의 밤’·‘낯익은 세상’·‘낯익은 타인들의 도시’·‘흑산’·‘도가니’ 등 베스트셀러이거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최근 펴낸 소설들 문단이 너무 길거나 짧아 독서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중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 15일 만에 관객 110만 명을 동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장편소설 ‘은교’를 잠깐 살펴보자.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술술 잘 익힌다싶을 즈음 너무 긴 문단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베스트작가쯤 되면 전적으로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고 할지 모르지만, 너무 긴 문단이 물흐르듯한 독서에 방해가 됨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와 다른 이야기지만, ‘은교’에는 또 다른 아쉬움이 있다. 별행을 잡지 않고 본문과 함께 쓴 대화들이다. 큰따옴표로 표시하여 호흡 방해 등 혼란을 최소화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썩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들쭉날쭉 문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베스트작가들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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