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현실과 제도 사이의 큰 간극
상태바
금융시장 현실과 제도 사이의 큰 간극
  • 투데이안
  • 승인 2009.10.30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미국에 다녀왔다. 8월에는 주로 월 스트리트 등 증권가 사람들과 기업인들을 만났었다. 이번에는 주로 미국 재무부와 중앙은행 사람들 그리고 브루킹스 연구소, 피터슨 연구소 등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세계적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금융개혁의 진행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재무부는 나름대로 제도개혁에 대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제도개혁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의회가 입법안을 내놓지 않아서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이번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본질이 파악되지 않았다.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으나 하나하나 따져 보면 마땅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시장 현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사이에 큰 간극이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현실은 어떤가? 은행부문보다 증권시장 등 비은행 자본시장의 규모가 훨씬 커졌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현행 금융제도들은 주로 은행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첫째, 중앙은행을 통해 은행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한다. 둘째, 예금보험을 통해 대량인출 사태를 방지한다. 셋째, 은행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이 있는지 그 건전성을 감독한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은행권, 다시 말하여 제2금융권에도 유사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번 금융위기의 와중에 미국 중앙은행이 비은행권, 심지어는 기업에까지 대량의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비은행권 투자자의 대량인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부실화된 제2금융권 회사들을 합병시키고 구제하였다. 살아 남은 대형의 제2금융권 회사들도 은행지주회사가 되어 은행감독체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의 자금공급 기능, 대량인출 방지 장치, 강화된 건전성 감독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전 총재인 폴 볼커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은행기능과 투자기능을 엄격히 분리하고 은행만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이다. 필자는 이것이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개입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개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제도화된 대책이 있어야 한다.

금융시장의 현실과 그 동안 고수해온 원칙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채 방치되면 정부의 원칙 없는 개입이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부자에게는 사회주의가 적용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감과 중용이 아닌가 싶다. 어디에선가는 정부개입의 선을 그어야 되는데 그게 어디냐 하는 것이다. 개인의 책임, 시장의 활력을 유지하면서도 위기를 방지하고 시장의 안정을 기할 수 있는 선이 어디냐 하는 것이다.

금융개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그런데 아직 이에 대한 근본적 원칙이 정립되어있지 않다. 세계화되고 다양해진 금융시장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만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인식의 한계를 절감한다. 위기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왔으면 한다. /채수찬(서울대·카이스트 초빙교수)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