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명소' 여수 향일암 20일 새벽 화재...대웅전 등 잿더미
상태바
'해맞이 명소' 여수 향일암 20일 새벽 화재...대웅전 등 잿더미
  • 투데이안
  • 승인 2009.12.20 1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대표적인 해맞이 명소이자 전남도 문화재 자료 제40호인 전남 여수 향일암(向日庵)에서 불이 나 대웅전 등 주요 건물이 잿더미로 변했다.

소방당국은 거센 바닷바람에다 겨울 추위까지 겹쳐 조기진화에 애를 먹었고, 향일암 해맞이 행사는 처음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방화여부에 대한 뚜렷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1시간도 안돼 3개동 '폭삭'

불이 난 시각은 20일 자정 무렵. 최초 119신고는 0시24분께 이뤄졌고, 군내지역대원들이 현장에 도작한 시각은 0시45분께. 발화에서 첫 진화까지 불과 40분 남짓 지나는 사이 사찰 건물 8개동 가운데 대웅전(51㎡), 종무실(27㎡), 종각(16.5㎡) 등 3개동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

불은 3시간여만에 완전 진화됐고, 소방서 추산 5억9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대웅전 안에 있던 청동불상과 탱화 등도 함께 소실돼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화재 당시 사찰에는 스님과 신도 등 16명이 있었으나 3시간전 기도를 모두 끝낸 상태에서 화재 직후 긴급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화재 이후 잔불 정리에 나섰던 마을 주민 1명이 무너진 바위에 깔리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강풍에 강추위, 좁은 길 '악재로'

불이 나자 소방대원과 공무원, 지역민 등 모두 290여명이 동원돼 진화에 나섰으나 사찰이 가파른 산 중턱에 있는데다 건조한 날씨탓에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인적이 끊긴터라 불길은 뒤늦게 발견됐고, 설상가상 불이 난 곳이 군내지역대로부터 15㎞, 돌산 119안전센터로부터 26㎞, 여수소방서로부터는 39㎞나 떨어져 있다보니 첫 소방차는 0시45분에야 가까스로 현장에 도착했다. 더욱이 사찰에 이르기전 1㎞ 구간은 소형 소방차만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비좁아 구급차는 접근조차 못했다.

초속 5-6m에 이르는 바닷바람도 화마(火魔)를 키우는데 일조했고 엎친 데 덮 친 격으로 기온마저 영하권을 맴돌아 진압초기에 뿌려진 물이 곧바로 얼어 붙으면서 소방관들은 불길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특히 국보 1호 숭례문 화재사건 후 문화재와 중요 사찰 보호차원에서 일종의 스프링클러인 미분무 설비시설이 갖춰져 있긴 하나 불이 난 3곳에는 공교롭게도 설치돼 있지않아 손을 쓸 수 없었다. 옥외소화전도 없어 소방관들은 암자내 3.5톤짜리 자체 저수조와 동력펌프를 이용, 진화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방화냐, 실화냐…"예견된 일" 책임론도

일단 여수소방서는 불이 난 건물이 모두 5-6m 간격으로 떨어져 있긴 하나 처마 길이 등은 감안하면 2-3m에 불과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옮겨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3개 건물이 독립된 건물이고, 처음 불이 난 대웅전에 촛불이 꺼져 있었던 점, 관광객이 많아 24시간 개방된 점 등에 비춰 누군가 고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재중심지인 대웅전의 경우 지난 4월에도 외부인의 난동으로 삼존불 좌대장식 등 상당수 기물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은 바 있어 신도들 사이에선 이번에도 외부인의 소행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사찰 관계자는 "4월 사건 당시 삼존불 좌대장식과 황금 단청, 불전함 유리 등이 모두 파손되면서 재산 피해액만 5000만원에 달했고, '우상을 숭배하면 안된다'며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며 "해맞이를 목전에 두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범행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누전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수개월전 완공된 새 건물이라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한해 수십만명이 찾고 있는 향일암에 스프링클러 등 초기 진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흔한 폐쇄회로(CC)-TV 하나 설치 돼 있지 않아서 "예견된 인재"라고 주장했다.

향일암 스님들은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된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여수시에 CCTV 설치를 건의했지만 여수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행정당국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일출제가 코 앞인데" 인근 상인들 울상

인근 주민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특히 31일 밤과 1일 밤을 지새우며 향일임 일대에서 해마다 치러진 일출제 준비에 여념없던 임포마을 주민들은 잿더미로 변해 흔적없이 사라진 대웅전과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기왓조각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향일암에 오르는 100여m의 좁은 길 양편에 늘어선 갓김치 판매상들도 화재 소식에 모두 나와 애들 태웠다.

상가번영회 김정균 회장(42)은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몰려갔지만 이미 불이 확산된 상태여서 접근이 어려웠다"면서 "일출제를 위해 주민들이 많은 준비를 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될까 허망하다"고 말했다.

갓김치 판매상인 윤형숙씨(38.여)는 "올해는 예년보다 더 많은 갓김치를 담가와 손님을 맞으려 했는데 갑작스런 화재소식을 듣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오후에 주민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관광객 김모씨(35.여.대전)는 "올해는 서둘러 일출을 보러 내려 왔는데 멀리서 불에 탄 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며 "향일암같은 유명 사찰이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다는 것이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여수시는 일출제를 에정대로 진행할지 고민중이며, 설령 예정대로 치르더라도 예년보다 규모를 대폭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향일암은 어떤 곳

항일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 말사이다. 서기 659년(의자왕 19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국내 4대 관음기도도량 중 하나다.

1984년 2월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됐으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해 연간 60만명의 관광객과 참배객이 찾고 있다. 특히 대웅전은 2007년 12월 새로 지어진 뒤 올해 상반기 내·외부를 황금으로 단청한 바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