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지향적인 것에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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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지향적인 것에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 교육’
  • 엄범희 기자
  • 승인 2009.06.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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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도교육청 과학정보교육과 장학사

“교육은 올바른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리더냐 아니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따랐기 때문에 리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치지향적인 것에 헌신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전국 최초로 실시하고 있는 전북도교육청의 수퍼영재사사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최영희 전북도교육청 과학정보교육과 장학사(49).

최영희 장학사의 교육관은 가치지향적이다. 다시말해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양보하고 더불어 사는 리더로서의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생들의 학력은 초·중·고·대학·대학원 등을 거치면서 높아지고 있지만, 갈수록 치열한 경쟁 등 가치교육이 사라지면서 사회에서 인정하고 원하는 지도자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최영희 장학사의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하지만 요즘 근심이 생겼다.

자신이 맡고 있는 수퍼영재사사교육이 올해 본예산에 책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경에 예산 2억을 올려 도교육위 심의과정은 통과 했지만 마지막 도의회 통과가 남아있다. 수학과 과학에 치중해 있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다른 과목에도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도교육청에서 주관하다보니 교사확보와 시설문제 등으로 양적 확대가 쉽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최 장학사는 각 지역교육청 영재교육원에서 주관해 심화과정으로 운영한다면 교사확보나 교육장소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데다 일반영재교육을 받는 교육과정과 연계성이 있어 교육효과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대학의 첨단시설과도 연계한다면 심도 있는 실험 역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되는 사사교육(멘토링) 프로그램은 초등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모두 160명을 대상으로 교과심화지도, Super 영재 Festival, 체험하는 봉사활동, Super영재사사교육 성과발표회, 선진국 영재교육 등 사교육이나 공교육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특별한 교육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영희 장학사는 부모님의 권유로 교육계에 입문했다. 지금까지 29년째다. 그는 이곳(교육계)에서 사람다운, 인간다운 사람으로 재탄생했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그가 교육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0년 고창 상하중학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초임지에서 그는 평생 동반자인 백영수(56·김제중 교감)씨를 만나 그 이듬해인 1982년 결혼에 성공했다.
당시만 해도 가정방문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초년병 교사였던 최 장학사는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며 할머니, 어머니들과 진솔한 얘기도 나누고, 마늘, 옥수수, 감자, 참외 등을 잔뜩 쌓아주며 인간적인 진한 감동을 느끼고 지낸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년이 흘렀다고 회고했다. 최영희 장학사는 신평중학교, 전주서중, 관촌중 등을 거쳤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수업이 무엇보다 첫째였다. 전공이 과학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수업을 잘 전달 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용 전달보다는 학생들이 이해를 잘 할 수 있을지 찾기 위해서다. 그의 실험수업엔 중1년에서3년까지 누구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대개 중학교 3학년이 되면 고등학교 입시 때문에 실험을 피하기가 일쑤다. 하지만 실제 3학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니 과학에 대한 흥미도 높아지고 성적도 더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교육계 제2의 도약기는 해외 연수했다.

1996년 전주서중시절, 최 장학사는 나이는 들어가고 경력은 쌓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갈등이 심했다. 당시에는 대학원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우연히 그해 과학교사 해외 1달 연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에 응시했다.

이것이 교육계 도약의 새로운 전기가 됐다. 할 일이 생긴 것이다. 1996년도에 영국 런던 킹스컬리지 과학연수를 다녀왔다. 하지만 연수 과정에서 영어회화를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손해인지 느꼈다. 그래서 그는 연수 후 전북대 어학교육원에 곧바로 등록해 영어공부에 전념했다.

관촌중학교는 최근까지 순창교육장으로 근무했던 오갑택 교감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고 있었고, 열린교육 교육부 지정 연구학교였다. 대다수 열린교육이 실패했다고 했지만 수업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탓에 호평을 받았다. 시범수업도 1년에 6~7번 할 정도였다.

그는 1999년 교육전문직에 도전했다. 순창교육장으로 근무했던 오갑택 교육장이 당시 관촌중 교감으로 있을 당시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2000년 두 번째 도전 끝에 합격했고, 2년 뒤인 2002년 남원교육청으로 첫 전문직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공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려워도 해야 할 일이지만 어린 애들에게 미안했다. 공부한답시고 식구들에게 너무 소홀했기 때문이다. 최 장학사는 당시 영어 공부한 것이 토대가 되어 전문직 합격이후 남원교육청으로 발령받아 원어민을 담당하면서 영어교사들을 연수 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교육청으로 이동한 뒤 영재교육 국외연수에도 도움을 줬다. 간혹 후배들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오면 특별한 지름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떨어지면 내가 조금 덜 했구나. 내가 합격하면 조금 더 했구나.’ 등 열심히 노력한 시간만큼 성과가 나온다고 충고하곤 한다.

그가 살아오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것도 이때다. 고등학교 때 이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서울대 갔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볼펜으로 열심히 기록하면서 볼펜이 다 달아지고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 재미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이쯤시절에 영어 공부에서 재미를 붙였고,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면서 새롭게 출발했다. 1999년 교육학을 열심히 했지만 한번 떨어진 것이 아까워 전문직을 계속 공부하면서 전북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에 덜컥 입학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석사,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최영희 장학사는 “남들은 힘드니까 다른 곳으로 나가 근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도교육청에 들어와서 근무할 것을 후배 전문직 교사들에게 권하고 싶다”면서 “교육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책임감이나 철학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장 자격을 얻기 위해 지난 4월부터 5월말까지 청주 교원대에서 교장 연수과정을 밟고 있는 최 장학사는 준오·준석씨 등 2남을 두고 있다./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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