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꿈, 기적을 통해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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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꿈, 기적을 통해 이루다
  • 박호진 기자
  • 승인 2014.01.21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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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기적의도서관

정읍시 수성동 신 택지지구 내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무지개를 닮은 둥근 지붕위에 달팽이가 기어다니는 곳, 어찌보면 비닐하우스처럼 또 어찌보면 잠수함처럼 보이는 곳, 그 속에서 어린이들이 안방에서처럼 기고 뒹글며 책과 함께 노는 곳, 그곳은 바로 6년 전 ‘어린이들의 꿈’의 상징으로 태어난 정읍기적의도서관이다.

○ 어른들, 도서관을 짓다

기적의도서관은 건립 당시부터 전 국민적 관심 속에서 태어났다.
2003년 유재석, 김용만이 진행한 MBC 교양오락프로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독서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국민들이 책을 읽게 하였고 나아가서 어른들(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 주도)은 모아진 기금으로 다름아닌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11개관(순천, 제천, 진해, 서귀포, 제주, 청주, 울산북구, 금산, 부평, 정읍, 김해) 을 짓게한 기적을 탄생시켰다.
정읍기적의도서관은 그렇게 해서 2008년 5월에 태어난 열 번째의 기적이었고 전북도내에서 이룬 유일한 기적이었다.
전 국민적 관심속에서 태어난 도서관인 만큼 정읍시민의 기적의도서관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아직도 기적의도서관이 낯선 몇몇 어른들은 엉뚱하게(?) 발음하기도 하지만 어린이전용도서관으로서 꽤 유명한 도서관인 만큼 찾는 이들도 다양하다.
매주 도서관 현장체험을 하는 관내 유치원생들과 내집처럼 드나드는 정읍시민은 물론이고 인근 전북지역 및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도 건축, 문헌정보학, 교원연수 등과 관련하여 도서관을 다녀갔다.
 2012년도에는 故정기용 건축가의 건축여정을 담은 독립다큐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본 영화관객들과 영화감독(정재은)이 다녀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개관이후 도서관을 찾은 이는 모두 40,133명이다.
그럼 이처럼 도서관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존의 도서관과는 달리 정읍기적은 '말하는 건축물', '말을 거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정읍기적을 설계한 故정기용(1945 ~ 2011)건축가는 성균관대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이미 무주공공프로젝트와 기적의도서관 5개소, 故노무현대통령 봉화마을 사저 등을 설계한 바 있는 탁월한 건축가이었다.
그는 설계를 위한 현지답사에서 언젠가는 개발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를 비닐하우스 속의 채소와 달팽이를 보며 무지개를 떠올렸고 흙으로 채소들을 키우듯 정읍의 어린이를 책으로 키우고자 그런 도서관을 구상했다고 한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꾸준히 자라고 무지개처럼 꿈 꿀수 있는 그런 도서관을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무지개를 닮은 둥근 지붕위를 밤에는 무지개빛으로 변신하는 달팽이가 걷는다. 조각가 안규철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제작된 달팽이(길이 5m)는 정읍기적의 상징물이 되어 여전히 어린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내부 공간은 더욱더 어린이들과 도란도란 얘기한다.
숨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의 습성을 배려한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많다.
엄마의 뱃속을 닮은 '영유아실' , 물에 떠있는 '섬마을', 작은 정자와 같은 '구름방' 등 한마디로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보면서 동시에 숨고 꿈 꿀수 있다.
이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무지개방 내 '동굴'로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누워서 책을 보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때론 낙서도 한다.
결국 낙서와의 전쟁에서 직원들로 하여금 백기를 받아내 낙서(落書)를 낙서(樂書)로 인정받은 그들만의 아성이기도 한 곳이다.
 
○ 어린이, 도서관에 젖다
도서관은 건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공간 구조만으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들을 즐거운 상상과 창조의 나라로 이끄는 매혹의 장소이어야 하며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가고 싶은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적의도서관은 일반 공공도서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운영 프로그램을 갖는다. 책읽기를 비롯해서 이야기 들려주기, 노래, 춤, 탐방, 놀이 등 창조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대화의 길을 터주고 가정과 도서관을 이어주기 위한 프로그램들도 있고 자녀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사회적으로 분담해주기 위한 ‘북스타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기적의도서관 설립취지와 정신에서 인용]
그래서 정읍기적은 가고 싶고, 즐기고 싶은 도서관을 위해 대상자 별로 최적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현재는 영유아 대상 2개 프로그램(북스타트, 도서관에서 놀아요)과 어린이 대상 5개 프로그램(독서논술, 책모임, 영화상영, 어린이사서, 동화구연특강), 어른대상 2개 프로그램(동화구연반, 인형극반), 3개의 특별프로그램(도서관에서 하룻밤자기, 도서관 땅따먹기 스템프왕 선발, 독서의달 행사)이 운영된다.
프로그램 대부분이 높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사업은 2012년도 독서의 해에 실시한 ‘꿈벽 프로젝트’이다.
10cm의 정사각형 나무판에 어린이들의 20년후의 모습을 담아 도서관 벽 일면 전체를 꾸민 이 사업은 한 살배기 아기부터 초등학생까지 1,300명의 어린이가 참여한 대규모 작업이었다.
어린이는 도서관에서 꿈을 꾸고, 도서관은 그 꿈을 이루도록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서로의 약속을 꿈벽에 새긴 것이다.
이 밖에도 정숙해야 할 도서관에서 아빠와 어린이들이 1박2일 동안 밤새 함께 뛰어 놀고 서가사이에서 잠들며 진한 가족애를 느낀 ‘우리집 왕따인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서 하룻밤자기’ 캠프와 재미있는 미션 8개를 완수한 뒤 도서관 점령 지도를 완성하는 ‘도서관 땅따먹기 스탬프왕 선발‘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도서관은 따분한 관공서가 아닌 즐거운 생각의 놀이터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더욱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과 놀 계획이다.
작아져 버려야 할 아기용품이나 책을 함께 나누고 활용하는 '북스타트 벼룩시장' 과 독서의달 행사 일환으로 유명 그림작가를 초청해 도서관 벽면을 어린이들이 직접 꾸며 보는 ‘작가와 함께 공동 벽화그리기'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 어린이, 어른을 향해 웃음짓다
요즘 정읍기적의도서관은 인력난에 고심하고 있다.
일할 직원은 현저히 줄은 반면, 이용자들의 요구는 더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 운영인력은 총4명(사서직2, 계약직1, 청원경찰1)으로 4만9천여권의 장서와 8천여명의 회원관리, 일일 120여명의 이용자에 대한 봉사와 12개의 문화프로그램 운영, 연 5천여권의 도서구입 등을 해내기에는 버거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어린이도서관은 서비스대상이 어린이라는 점에서 일반 도서관보다 두배 이상의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력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해결책은 바로 자원봉사자이다.
주말 개관시 반납도서를 정리해주는 10여명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일정 교육후 임명된 13명의 어린이 사서와 33명의 자원활동가, 4개의 동아리 회원들, 그들은 도서관을 움직이는 숨은 주역이다.
북스타트와 도서관에서 하룻밤자기 캠프 운영시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책읽고, 놀아주는 ‘도서관 엄마’가 되며 동화구연 특강, 인형극공연, 이야기 방석 운영시에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에서 60세가 넘은 할머니까지 자원활동가들의 자발적이고 열정적인 참여 덕분에 정읍의 어린이들은 행복한 웃음과 함께 이 사회를 신뢰하고 장차 마음이 따뜻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어린이 도서관을 ‘기적의도서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린이도서관의 탄생이 기적적인 사건이라는 것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순간 그것이 기적 같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정기용 건축가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린이와 아낌없이 나누는 자원활동가, 도서관을 아끼는 시민들,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정읍기적의도서관은 또다른 기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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