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주“전주는 어머니와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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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주“전주는 어머니와 같은 곳”
  • 엄범희 기자
  • 승인 2010.01.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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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고, 키워줬고, 가르쳤고, 먹여준 전주는 나의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28일 전주시 예술회관에서 열린 ‘희망을 이야기하는 공감마당’ 도민과의 대화에서  어린시절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왔던 삶의 과정을 얘기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의 힘겨웠던 삶을 귀담아들은 시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올해의 화두인 일자리창출, 민생경제 살리기,  새만금 내부개발사업 추진 등 굵직굵직한 전북의 사업들이  이뤄지기를 기원했다.

김 지사의 전주와의 인연,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아온 과정 등 이날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김 지사 선친의 고향은 군산 임피다. 동학난을 겪으면서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로 이사했다. 김 지사 가문의 가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술 먹지마라’ 두 번째는 ‘도장 잘못 찍지 마라’다.

광산 김씨다 보니 어지간히 술 잘 마시는 집안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김지사가 태어난 곳은 전주다.  하지만 고향은 임실이다. 가족은 1남 2녀였지만 현재는 여동생과 단 둘이다. 김 지사와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기 위해 봉제공장에 다녔던 누이는 폐병으로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어린시절(9세) 선친께서 두번째 가훈인 도장을 잘못 찍는 바람에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됐다.  여동생은 친척집에 맡겨졌고, 선친은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힘겹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김지사와 선친은 전주시 동서학동으로 터를 옮겼다. 본적이 동서학동 118번지인 것도 이때부터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임실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완주라는 이름은 부모님께서 지어줬지만, 지금 생각하면 선거에 당선되는데 큰 역할을 해줬다.

그는 전주에서 집을 옮긴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사를 많이 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을 하게 된 셈이다.

고등학교 3년을 마칠 무렵 선친께서는 생활이 힘들어 전문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2년제 전문대학에 입학해 동생도 가르치고 힘든 생활고도 해결해 주기를 바랐던 선친의 말씀을 따르기로 맘먹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남자는 서울로 가야 한다’는 성화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대학을 졸업할 것이니 서울로 보내달라고 선친을 설득했다.


촌놈인 김 지사가 난생 처음 바라본 서울은 너무 휘황찬란했다.

김 지사의 꿈은 교수였다. 당시 대학 은사는 외국 유학을 보내 주겠다며 대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은사가 정치와 연관되면서 유학의 꿈은 사라졌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선친께서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김 지사의 가정교사 생활은 시작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날마다 고기 먹고, 자가용 2대를 가지고 있는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가르치는 학생의 성적이 올라가지 않으면 마구 때리며 가르쳤다. 때려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이어지다보니 성격이 맞지 않아 가정교사를 그만뒀다.

그는 학원 강사가 적성에 맞다며 서울 종로에 있는 00학원 강사로 들어갔다.

그러던 중 1973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그의 첫 발령지는 국토건설부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어 당시 고건총리를 만나 전북 발령을 부탁했다.

그는 1978년 전북도청으로 발령받으면서 30년 넘는 전북에서의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인후동에 거처를 정한 그는 현재까지 인후동에서 살고 있다./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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