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과 박초월의 인연-광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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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김명곤 전 문화관광부장관과 박초월의 인연-광대는?
  • 엄범희 기자
  • 승인 2010.02.0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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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란 '넓은 광(廣), 큰 대(大)'라는 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 아닐까?”

김명곤 전문화관광부장관(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은 대학시절에 오페라-이태리 민요-가곡뮤지컬-비틀즈 등 서구음악에 열광적인 팬이었고, 괴테나 세익스피어, 입센, 도스토에프스키 등 서구문학(독문학)에 심취했다.


하지만 우연히 판소리를 알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의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전주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고향인 전주를 너무 싫어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흔적이 너무나 짙다보니 전주를 어서 떠나 서울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진학공부를 했다.

그리고 서울로 상경해서는 한국을 어서 떠나 독일로 유학 가겠다고 맘먹었다. 그러던 그가 인간문화재 박초월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그는 전라도 말이 그렇게 다양한 표현과 영롱한 문학적 향기가 있는지를 느끼게 됐다.

그랬다. 핏줄에 대한 애정 곧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의 조상과 조국에 대한 사랑도 회복됐다.

그는 80년대 초부터 박초월 명창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스승으로 모셨다.

그래선지 그의 이번 남원방문은 남다르다. 그는 남원 여정 가운데 박초월 생가를 가장 먼저 찾았다.


박초월 생가는 남원 운봉 비전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박초월 명창의 스승인 송흥록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남원시가 송흥록- 박초월 생가를 복원해 역사적 자료 등 관광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박초월 명창은 그를 매우 아꼈다. 김전장관의 선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집밖으로 나올수 없게 되자 돌볼 사람은 김전장관 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판소리에 심취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두말할 것 없이 힘들었다. 박 명창이 가끔씩 김전장관의 집에 들러 금일봉과 용돈을 조용히 놓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당뇨가 심한 박 명창은 항상 그를 곁에 두고 다녔다.

노래를 부르는 국립극장 등 밖에서 보이는 박 명창의 얼굴은 언제나 화려한 웃는 모습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면 그의 얼굴모습은 180도 변한다. 당뇨가 심해지면서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박 명창이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연주를 하다 갑자기 집으로 가자며 서둘렀다.
 
그는 춘향가를 부르다 심청가 대목이 나오고 흥부가 대목이 나오는 등 기억력을 잃어갔다. 게다가 당뇨로 연주 중 실례를 했기 때문이다.

박 명창이 돌아가시던  그날 밤 선친께서는 두번째 뇌졸증이 발병했다. 그는 박 명창의 상을 치르기도하고 선친의 뇌졸증을 돌보기도 하면서 두가지 일을 해야했다.


그는 ‘무식무기력’한 광대들에게서 그의 예술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그는 ‘수천 년을 하루같이’ ‘동양의 부패한 풍습'을 몸으로 전해 온 그들의 예술에 매혹 당하고 심취하고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광대들이 ‘몸을 놀리는 기술’ 속에서 삶의 깊은 애환과 감동을 보았고, 광대들의 ‘우스개 놀이’ 속에서 예술적 창조의 편린을 보았다.

광대들은 그의 스승이었고, 그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광대 종족의 일원이 되고자 ‘광대’라는 말을 쓴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연기, 연출, 극작, 경영, 행정에다가 연극, 영화, 국악, 방송 등 여러 분야에 간여하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한다.

당신의 정체는 뭐요? 라고 물으면, 그는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광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전통은 박물관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니다. 전통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았던 삶의 내용과 형식 곧 그들의 삶의 자취이고 향기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세월이 지나면 전통의 계승자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통 그 자체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는 "전통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활기 있게 만들어 주고, 또 창조의 열정에 불타게 하는 소중한 원천이다."고 표현했다./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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