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하게 무너진 베네수엘라 포퓰리즘 반면교사 삼아야

허성배/논설위원

2017-11-19     허성배

정부가 양극화 해소와 소규모 기업이나 자영업을 돕기 위한 일자리 안정기금을 국고로 지원한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내년 1월부터 1년간 3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300만 명에게 1인당 최대 13만 원씩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민간기업의 임금을 국고에서 보전해주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려고 세금이나 사회 보험료를 감면해준 나라는 있어도 국민 혈세인 현금으로 보전해주는 사례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한 찾아볼 수 없다. 정부 돈을 주려면 해당 기업의 고용·임금 전반을 세밀하게 살펴 본 다음 시행해야지 퇴출이 불가피한 기업까지 정부의 개입으로 탁상공론식으로 연명케 하는 것은 반(反)시장이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문재인 정부가 내년 최저임금 인상분 보전용으로 3조 원 규모의 혈세(血稅)를 투입하기로 했는데 비정규직 0, 탈원전 등에 이어 경제 재앙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한 채 어설픈 정책을 펴고 있어 일부 경제전문가들의 걱정이 크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내걸고, 이를 위해 지난 7월 15일 최저임금을 16.4% 무리하게 올리면서 예고된 일이지만 영세 사업자들의 사업 포기와 일자리 감소 등 후유증이 시작됐다. 그러면 후속 대책이라도 정교해야 하는데 세금을 퍼붓는 ‘단순한 반시장, 비현실’ 적 길을 택한 데다 이는 민생 현장의 실상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결국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데 해외 시장에서 600억 달러가 넘는 채권을 발행한 이 나라는 지난 13일 한 달간의 지급 유예기간이 지난 이자 2억 달러를 못 갚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즉각 베네수엘라가 `선택적 디폴트(채무상환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선언했고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같은 판정을 내렸다.
이 나라의 총 외채는 러시아와 중국에서 빌린 돈을 포함해 1,500억 달러가 넘는다. 그 규모가 2,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 기관도 있다. 하지만 2008년 430억 달러에 이르렀던 외환보유액은 이제 100억 달러에도 못 미친다. 이 나라는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극단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치달은 이 나라 지도자들은 그토록 엄청난 자연의 선물을 흥청망청 써버렸다. 1999년부터 14년 동안 집권한 우고 차베스 정부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얻은 막대한 수입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무상주택 시리즈에 퍼부으면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와 제도 개혁은 게을리했다. 2013년 차베스 사후 그의 복지 포퓰리즘을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결국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 파탄을 맞았다. 올해 이 나라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한다.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다짐했던 마두로는 퇴진 압력이 높아지자 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고 성탄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며 선심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물가가 올해 700% 넘게 뛰고 내년에는 2000% 이상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는 마당이라 성난 민심을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이 나라 지폐는 이제 품귀 상태인 화장실 휴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사례에 비추어 사회주의적 포퓰리즘이 가져다주는 비극의 종말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여, 야 정치권, 특히 입법부와 국민 모두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