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문학신문’, 아자!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8-06-13     장세진
지금 막 ‘교원문학신문’ 제2호 편집을 마쳤다. 그렇다. 지난 4월 2일 오랜 고민 끝에 계간 ‘교원문학신문’ 창간호를 냈다. 나로선 벌써 네 번째 신문 창간이다. ‘오랜 고민 끝에’라고 말한 것은 지도교사였던 지난 세 번과 달리 내가 발행인으로 나서게 되어서다. 모든 책임과 함께 재정적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발행인이기에 오래 고민하는 등 산통(産痛)을 겪게된 것이라 할까. 
고교 교사이던 내가 한별고등학교의 ‘한별고신문’ 올컬러 타블로이드판 창간호를 낸 것은 2001년 4월 2일의 일이다. 이후 발령 임지에 따라 ‘전주공고신문’과 ‘녹원신문’(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편집인이 되어 학교신문을 발행(응당 발행인은 교장이다.)했다. 2013년 12월 20일자 ‘녹원신문’ 제20호 발행까지 무려 13년간 학생들을 지도하여 사제동행으로 일궈낸 일이다.
그 동안 4차례나 상을 받았다. 가장 큰 상은 2001년 제6회전국학교신문?교지콘테스트(SK글로벌?문화일보 주최, 교육부 후원) 고등부 최고상인 금상이다. 읍 단위 시골 학교의 위상을 전국에 알렸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교육부총리 지도교사상을 수상했다. 전국 여러 학교에서 ‘한별고신문’을 벤치마킹한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후 학교를 옮겨서도 학교신문 제작지도는 계속되었다. 2008년 전주공업고등학교의 ‘전주공고신문’으로 전주일보사 주최 제2회전북학교미디어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2010년엔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의 ‘녹원소식’(‘녹원신문’의 예전 제호)으로 전주일보사 공모전 은상을 수상했다. 2011년엔 ‘녹원소식’으로 제4회전북일보NIE대회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침내 2015년 3월 25일 나는 문예지도와 함께 학교신문 제작지도의 공적을 인정받아 제25회 남강교육상 수상 교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점을 몸담고 있는 문단에서도 인정했는지 그 해 가을 나는 계간 ‘전북문학신문’ 편집인을 맡게 되었다. 내심으론 명퇴를 앞둔 시점이라 퇴직후 본격적인 일거리를 자청한 셈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 ‘전북문학신문’ 발행후 내 뜻과 무관하게 하차하고 말았다. 2016년 6월 발행 신문을 위해 제법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회장(발행인)한테 전화가 왔다. 한 마디로 편집을 맡아 할 사람이 있다는 전언이었다. 사실은 기위 발행된 신문 지면이 너무 타이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점을 감안하여 일반신문처럼 해볼 생각이었는데, 아예 잘린 것이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이후 ‘전북문학신문’은 2016년 다른 이름의 여름호로 딱 한 번 나왔을 뿐이다. 그런 일을 겪은지 2년 만에 ‘교원문학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의 또 다른 이유라 할까. 아마 회원 수 30명이 채 안 되는 문학회가 계간 발행의 올컬러 신문을 내는 것은 전국 최초가 아닐까 싶다.
과거 학교신문처럼 학생기자들이 없어 무기명 기사가 대부분인 ‘교원문학신문’이 될 수밖에 없음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망정 발행인 ‘갑질’ 따위가 없는 ‘교원문학신문’만으로도 일할 맛 100%다. ‘교원문학신문’이니만큼 당연히 교원문학회 활동이나 회원들 출간 같은 근황 등이 지면을 채우고 있다. 십시일반 후원자도 늘어 인쇄소 가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회원들을 비롯한 독자들의 그런 관심과 성원이 너무 고맙다. 더욱 보람을 느껴 뭉클해짐 역시 말할 나위 없다. 비록 타블로이드판 4면짜리의 교원문학회 기관지이지만, 신문의 사명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몇 번 나오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문인단체 신문이 되지 않게 혼신(渾身)을 다하리라 다짐해본다. ‘교원문학신문’,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