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는 봄에 열어야 제격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9-04-16     장세진
이미 10여 년 전 ‘학교 축제 봄에 열어야’(세계일보, 2008.5.2.)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학교신문과 교지제작을 지도하고 있는 국어교사로서 학생기자들을 데리고 이웃에 있는 여고의 축제를 다녀와서 쓴 글이다. 교지에'문화현장탐방'기사로 싣기 위해 취재차 갔는데, 축제의 의미가 반감되는 듯했다. 장마철인 한여름의 축제였기 때문이다.
마침 장맛비가 그쳐 신명나는 여고생들의 한판 열기를 접할 수 있었지만, 먹거리나 전시물을 빼곤 거의 모든 행사가 학교 밖 학생회관에서 펼쳐져 다소 아쉬웠다. 이와 달리 딸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축제는 11월 말에 열렸다. 아니나다를까 그 날은 쌀쌀하고 바람도 불었다. 그 외 많은 일반계 고교의 축제가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11월 말경에 열리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근무했던 어느 여고도 겨울 축제였다. 재임 내내 봄에 열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정기 인사에 따라 학교를 떠나야 했다. 막내딸이 다녔던 중학교는 아예 한 술 더 뜬다. 세상에 겨울방학 종업식날(12월 28일) 축제를 했으니 말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지금 그 학교들 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니 장마철 한여름의 축제였던 학교는 2014~2015년엔 12월 20일 이후, 그러니까 한겨울에 열렸다. 그나마 2018학년도엔 축제 자체가 폐지되었는지 ‘이달의 행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딸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축제는 12월 20일, 내가 근무했던 어느 여고에선 12월 24일 축제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다행이랄까. 막내딸이 다녔던 중학교는 11월 6일 비교적 덜 추운 시기로 축제일이 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도 그렇고, 그걸 심의한 학교운영위원들이 어떤 의식을 가진 사람들인지 진짜로 궁금하다. 학교 나름의 이유야 있을테지만, 하자는 것인지 하지 말자는 속셈인지 알 수가 없다.
‘산천어축제’니 ‘얼음꽃축제’니 겨울이라야 할 수 있는 잔치 한마당이 있지만, 학교 축제를 왜 겨울에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11월 하순이나 12월에 치르는 축제의 가장 큰 적은 추위와 바람 등 악천후다. 추위와 바람에 쫓겨 몸을 움츠리다보면 축제고 뭐고 제 정신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 와중의 축제가 진정한 잔치이겠는가?
학교측에선 수능을 끝낸 3학년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말잔치일 뿐이다. 수능을 끝낸 3학년들은 원서접수, 캠퍼스 견학 등 사실상 학교에 정상 등교하는 일이 드물다. 축제에 출연하는 극소수3학년 학생을 제외하곤 대부분 축제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반쪽짜리 학교 축제인 셈이다.
왜 엄연히 학교 구성원인 3학년이 빠진 채 축제를 열어야 하나? 학교 나름대로 이런저런 사정이야 있겠지만, 축제는 봄철에 열어야 제격이다. 잠시나마 모든 학생들이 공부나 취업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확 털어내는 축제여야 한다. 다시 정진하기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되 크나큰 기쁨으로 즐겨야 진정한 축제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학교들이 봄에 축제 한마당을 펼치고 있다. 운동장 등에서 화창한 날씨와 함께 맘껏 즐기는 학생들 모습을 보노라면 그 젊음의 역동성이 너무 좋다. 또한 미술 및 시화작품들을 실외에 전시해놓아 공연이나 관람 틈틈이 혹은 점심시간때 오가며 살펴볼 수 있어 좋다. 준비한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의 애씀이 오롯이 드러나 더 없이 축제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다시 힘주어 말한다. 학교 축제는 봄에 열어야 제격이다. 교사들이 조금만 더 신경쓰고 움직여준다면 가능한 일이다. 교육감들은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학교 자율이라며 발뺌하지만 말고 학교 축제가 봄에 열리도록 적극 지도ㆍ감독해야 한다. 축제, 그때만이라도 입시지옥과 열악한 학교현실에 시달리는 우리 학생들을 맘껏 즐기게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