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9-06-24     장세진
축구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건 아마도 2003년 부임해간 전주공업고등학교 근무시절부터이지 싶다. 그냥 국어교사였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전주공고신문’ 지도교사였다. 현장 취재의 기사 작성을 위해 전주공고 축구부 경기를 많이 보러 다녔다. 이후 축구는 열 일 제쳐두고 유일하게 보는 스포츠 경기가 되었다.
5월 23일부터 6월 15일(현지시간)까지 폴란드에서 개최된 ‘2019 20세(U-20)이하 월드컵’(이하 ‘2019U-20월드컵’)의 경우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포루투갈전부터 보았다. 0대 1로 패하는 걸 보고 ‘죽음의 조’를 실감해야 했다. 2년 전 같은 대회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1대 3으로 져 8강 진출에 실패한 악몽이 떠오른 경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다 한 패배였을 뿐이다. 이후 어린 태극전사들은 승승장구했다. 2019U-20월드컵’에 흥미와 함께 기대감을 갖기 시작한 이유다. 가령 6월 5일 0시 30분(한국시간. 이하 같음) 시작된 일본과의 16강전은 ‘운칠기삼’을 떠올리게 한 경우다. 1대 0으로 이겼는데, 일본의 골이 골대를 맞았고, 결국 우리의 행운이 되어서다.
이후 8강전ㆍ4강전이 새벽 3시 30분부터 열렸지만, 기꺼이 잠을 뿌리치고 본방사수에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특히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로 승리한 두 시간 넘는 혈투가 된 세네갈과의 8강전 경기가 압권이라 할만하다. 축구를 보느라 꼬박 밤을 샜는데도 피곤은커녕 뭔가 뿌듯한 기분이 이후의 잠까지 설치게 했을 정도다.
개최국 폴란드와의 시차 때문 평일 새벽에 진행된 에콰도르와의 4강전 경기를 볼 때는 출근할 일이 없는 퇴직자 신분이 다행이고, 고맙기까지 했다. 국회 파행 등 답답함이 계속되는 나라꼴을 말끔히 잊게해주는 태극전사들의 연승 행진이라 할까. 오히려 결승전을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한 국민들이 많았을 법하다.
16일 새벽 1시부터 열린 2019U-20월드컵 결승전에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1대 3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잠을 설쳐가며 새벽 3시 30분부터 경기를 시청한 팬들, 지난 주 내내 요란했던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대대적 보도,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의 국민적 응원 열기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조별 리그 두 번째부터 내리 5경기를 승리한 팀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고 패해서다. 한국팀은 결승 전날 밤 우크라이나와 대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언론에 공개를 약속한 15분도 비공개하며 보안을 중시했던 우크라이나와 다르게 백퍼센트 언론에 노출되도록 한 것이다. 혹 그런 자만심이 치명타가 된 건 아닐까.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 경기는 지상파 3사 합계 시청률이 서울 수도권 42.49%, 전국적으로도 30%가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국민적 열기가 후끈했기에 1대 3 패배는 아쉬운 결과일 수밖에 없다. ‘즐기는 축구’ 운운하며 ‘헝그리 정신’이나 윽박지르기의 전통적 리더십이 적폐로 몰리는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글쎄, 그게 온전한 답은 아닌 듯하다.   
그런 아쉬움은 ‘막내형’이란 애칭으로 불린 이강인의 골든볼(최우수선수상) 수상에서 상당량 상쇄된다. 지금까지 67%가 우승국 선수에게 돌아갔다는 골든볼 수상을 이강인이 한국 선수 최초로 일궈낸 것이다. 2년 전 전주를 비롯 국내의 6개 도시에서 개최된 2017U-20월드컵때 ‘U-20월드컵 8강 탈락을 보며’란 칼럼을 썼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의 놀라운 발전이고 진화다.
그렇다. 2019U-20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은 남자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피파 주관 대회의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이은 준우승이란 역사다. 한국 선수의 사상 첫 골든볼 수상이란 역사다. 비주류 혹은 변방에 머물렀던 정정용 감독과 이른바 언더독(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들이 일궈낸 성과라 새로 쓴 역사가 더 돋보이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2005년 18세 메시에 이어 골든볼을 거머쥔 같은 나이 이강인만 해도 소속팀 리그 경기에서 3경기 21분만 뛴 선수다. 기가 막힌 선방으로 ‘빛광연’이란 별명을 얻은 골키퍼 이광연은 K리그1 강원 소속이지만 프로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선수다. 4강전에서 이강인의 명품 패스를 받아 골을 작렬시킨 최준은 정호진과 함께 대학생 선수, 그러니까 아마추어다.
그래서일까. 17일 낮 12시 서울광장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환영식이 열렸다.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생중계한 이런 환영식이 언제 있었나 생각해보면 2019U-20월드컵에서 거둔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에 이은 준우승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장하다,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 감독과 코치진, 어린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