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익산 웅포 입점리 고분전시관
고대 백제인 빛나는 문화·예술의 정수… 세월의 더께 간직한 풍경 속에서 한가로운 시간 ‘만끽’
2019-11-20 문공주 기자
입점리 고분군의 유형은 수혈식석곽묘(구덩식돌관무덤) 11기, 횡구식석곽묘(앞트기식 돌곽무덤) 2기, 횡혈실석실분(굴식돌방무덤) 7기, 옹관묘(독무덤) 1기로 여러 가지 유형의 고분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입점리 고분에서 대표적인 무덤은 86-1호분과 98-1호분이다. 다른 무덤들은 경사가 비교적 심한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많이 훼손됐으나, 1호분만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구조를 상세히 알 수 있다.
입점리 86-1호분은 경사면을 ‘ㄴ’자로 파고 자연괴석의 평평한 면으로 맞춰 벽을 쌓았으며, 벽의 80㎝ 높이부터 널방 안쪽으로 네벽을 맞조이며 둥근천장(궁륭식)으로 만들어졌다. 시기는 5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백제 중앙의 무덤양식과 같아 중앙세력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 지역 최고의 세력으로 성장한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분 98-1호분은 수혈식석곽묘로 길이 3.2m, 폭1.4m로 돌곽이 다른 고분보다 훨씬 큰 것이 특징이다. 이 무덤에서도 금동제 귀걸이, 목걸이와 팔찌로 사용된 옥,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돼 입점리 고분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옹관묘(독무덤)-어린아이 또는 두벌묻기
입점리고분에서 옹관묘는 단 1기만이 발견됐다. 옹관묘는 주검을 독(甕)이나 항아리(短頸臺)에 넣어서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들거나 독을 넣을 만큼 적당히 파서 묻는 무덤을 말한다.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른 철기시대를 거쳐 한국의 남부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오랜 전통을 가진 무덤양식 가운데 하나다. 옹관묘 사용시기에 쓰인 토기는 대개 민무늬토기(無文土器)나 민무늬토기 계통의 적갈색 연질토기, 회색 삿무늬토기가 주로 사용됐다. 독의 크기로 보아 묻힌 사람은 어린아이나 혹은 두벌묻기(二次葬)의 방법으로 어른을 세골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입점리고분에서 옹관묘는 단 1기만이 발견됐다. 옹관묘는 주검을 독(甕)이나 항아리(短頸臺)에 넣어서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들거나 독을 넣을 만큼 적당히 파서 묻는 무덤을 말한다. 청동기시대 이래로 이른 철기시대를 거쳐 한국의 남부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오랜 전통을 가진 무덤양식 가운데 하나다. 옹관묘 사용시기에 쓰인 토기는 대개 민무늬토기(無文土器)나 민무늬토기 계통의 적갈색 연질토기, 회색 삿무늬토기가 주로 사용됐다. 독의 크기로 보아 묻힌 사람은 어린아이나 혹은 두벌묻기(二次葬)의 방법으로 어른을 세골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웅포리에서 발굴 백제무덤 5기는 2004년부터 2007까지 조사된 무덤으로 2007년 입점리 고분지역으로 이전 복원됐다. 고분의 형식은 굴식 돌방무덤 1기와 앞트기식 돌덧널무덤 4기이며, 굴식돌방무덤은 웅진과 사비시대에 백제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사용됐고 앞트기식 돌덧널무덤은 구덩식돌덧널무덤에 굴식돌방무덤의 영향으로 축조된 무덤이다. 이 무덤들은 금강하류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익산 입점리 고분, 웅포리, 군산 산월리, 장성리에서 조사된 무덤들과 함께 금강 하류지역의 지배세력과 그들의 무덤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돌널무덤 또한 웅포리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으로 2004년 발굴돼 2005년 입점리 고분지역으로 이전 복원됐다. 이 돌널무덤은 풍화암반층을 파낸 후 판석모양의 돌을 세워 길이 130㎝ 폭 50㎝ 깊이 40㎝ 내외 크기로 널을 만들었다. 이는 익산 황등 율촌리고분, 망성 화산리유적, 군산 아동리유적, 서천 오석리유적의 돌덧널무덤과 함께 이 시대 청동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