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 전환, ‘이름’보다 ‘권한’이 먼저다

오상영 원광보건대학교 전 겸임교수 삼례로타리클럽 제48대 회장 삼례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2026-10-14     전북연합신문

 

완주군 주민자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기반이 강화되면서 주민이 지역의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결정하는 주민자치를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변화를 단순히 ‘주민자치위원회’라는 명칭을 ‘주민자치회’로 바꾸는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권한이다. 주민에게 무엇을 결정하게 할 것인지, 그 결정이 행정과 예산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가 주민자치회 전환의 핵심이다.
완주군은 주민자치회를 처음 시작하는 지역도 아니다. 고산면은 2013년 당시 안전행정부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대상지역으로 선정돼 그해 12월 주민자치회를 구성했고, 이후 주민자치회를 운영해 왔다.
이 경험은 앞으로 완주군 주민자치회 전환의 중요한 자산이다.
완주군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기 전에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다른 지역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고산면에서 지난 10여 년간 무엇이 제대로 작동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주민 참여는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주민자치회가 실제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했는지, 행정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주민자치위원회와 비교해 권한과 역할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잘된 것은 확대하고 부족했던 것은 보완해 다른 읍·면의 전환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완주군 13개 읍·면의 여건은 모두 다르다. 삼례·봉동·이서와 농촌지역은 인구 구조와 산업, 주거 형태, 생활권은 물론 주민자치 경험에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일률적인 전환보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준비가 필요하다.
필자는 고산면의 운영 경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토대로 ‘완주형 주민자치회 전환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읍·면별 주민자치 현황과 전환 방향을 진단하고 기존 위원의 임기, 새로운 위원의 모집과 선정, 주민총회, 자치계획, 분과위원회, 주민참여예산과의 연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조례 정비도 중요하다. 위원 정수와 자격, 임기와 연임, 공개모집과 선정 방식, 주민자치교육, 주민총회, 자치계획, 분과위원회, 사업과 회계 등 주민자치회의 실질적인 운영 기준이 조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이 먼저 틀을 만들어 놓고 주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를 만드는 과정부터 주민이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민자치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필자는 삼례읍 주민자치위원회 3기와 4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위원 개개인의 역량이 주민자치의 수준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와 마을 의제를 찾아내는 능력, 다양한 주민의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량이 없다면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가 위원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지역에서 오래 활동했거나 특정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원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공개모집의 문은 넓게 열면서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와 참여 의지, 지역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주민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특정 단체나 인맥에 편중되지 않도록 선정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확보해야 한다. 청년과 여성, 어르신, 농민, 자영업자, 직장인뿐 아니라 아파트와 원도심 등 서로 다른 세대와 생활권의 주민들이 고르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역시 몇 시간의 형식적인 수료 과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민총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마을 의제를 어떻게 발굴하는지, 자치계획과 주민참여예산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주민 간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배워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삼례읍만 보더라도 원도심 활성화와 전통시장, 터미널 주변 환경, 주차와 보행안전, 어르신 복지, 청소년 공간, 문화와 관광 등 주민이 함께 논의해야 할 생활 현안이 적지 않다.
주민자치회가 이러한 문제를 주민의 목소리에서 찾아내 지역 의제로 만들고 자치계획을 세운 뒤 주민총회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주민참여예산과 완주군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봉동은 산업과 주거의 상생, 이서는 혁신도시와 기존 지역의 균형발전, 농촌지역은 교통과 고령화, 돌봄과 생활서비스 등 지역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르다. 획일적인 주민자치가 아니라 각 지역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 해결하는 것이 ‘완주형 주민자치’의 방향이어야 한다.
행정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주민자치회를 행정의 보조조직이나 행사를 돕는 조직으로 바라보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정이 사업을 정하고 주민에게 참여를 요청하는 방식에서 주민이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해 결정하면 행정이 이를 지원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주민총회 역시 사람을 많이 모으는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공개하고 토론하고 투표해 지역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주민 의사결정의 장이 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총회 이후다.
주민총회에서 결정된 사업 가운데 무엇이 다음 해 예산과 군정에 반영됐고, 무엇이 반영되지 못했는지 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반영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주민이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참여는 오래가지 못한다. 반대로 주민의 제안이 실제 예산과 정책에 반영돼 마을을 변화시키는 경험이 쌓인다면 주민자치는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 된다.
완주군에는 이미 고산면 주민자치회의 10년이 넘는 경험이 있다. 이제 그 경험을 단순한 시범운영의 역사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성과와 한계를 제대로 평가해 완주군 전체 주민자치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주민자치회 전환은 주민자치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완주군은 고산면의 경험을 토대로 각 읍·면의 현실을 진단하고 조례와 위원 선정, 역량교육, 주민총회, 자치계획, 주민참여예산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필자는 주민자치회의 성공을 위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주민에게 실질적인 참여와 결정의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할 역량 있는 주민자치회를 만드는 것이다.
행정이 결정하고 주민이 따라가는 시대에서 주민이 제안하고, 주민이 토론하고, 주민이 결정하며 행정이 지원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
완주군 주민자치회의 성공은 간판을 얼마나 빨리 바꾸느냐가 아니라 주민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권한을 돌려주느냐에 달려 있다.
주민자치의 주인은 행정도, 위원도 아니다. 주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