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 회의하는 조직을 넘어 마을을 바꾸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오상영 원광보건대학교 전 겸임교수 삼례로타리클럽 제48대 회장 삼례읍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2026-10-27     전북연합신문

 

주민자치의 주인은 주민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주민이 자신의 마을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은 대부분 행정이 계획하고 결정해 왔다. 주민은 행정이 추진하는 사업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 주민자치위원회 역시 주민자치센터 운영과 지역 봉사활동 등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지만, 주민이 지역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 주민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발전시키려는 제도가 주민자치회이다.
그러나 필자는 제도 전환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자치회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주민자치회 역시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지역 조직에 머물 수 있다.
주민자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민의 생활 속에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마을의 문제는 행정자료나 회의실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주차 공간, 어두운 골목길, 어르신들의 이동 불편, 청소년 문화공간 부족, 침체된 지역 상권 등 주민의 일상 속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지역마다 인구구조와 생활환경이 다르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도 다르다. 주민자치회는 이러한 생활 현안을 주민과 함께 발굴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행정과 협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민원을 전달하는 조직이 아니라 주민의 요구를 실질적인 해결방안으로 연결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역할은 주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특정 단체나 일부 지역 인사들만의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지역을 위해 봉사해 온 주민들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청년과 여성, 농업인, 소상공인, 직장인, 공동주택 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주민총회는 주민이 지역의 문제를 직접 제안하고 토론하며 필요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중요한 참여의 장이다.
주민총회가 매년 반복되는 형식적인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무엇을 제안했고, 어떤 사업을 선택했으며, 그 결과가 정책과 예산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주민자치의 수준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주민의 의견이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됐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세 번째 역할은 주민의 제안을 정책과 예산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견이 나와도 실행되지 못하면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 오래가지 못한다. 주민총회에서 선정한 생활밀착형 사업을 주민참여예산제와 연계하고, 행정의 담당 부서와 협의해 실현 가능한 사업부터 추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물론 주민자치회가 독자적으로 행정 예산을 결정하거나 지방의회의 권한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관련 법령과 조례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행정과 협력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의 목소리가 단순한 건의로 끝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네 번째 역할은 지역의 다양한 단체를 연결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는 이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상인회, 자원봉사단체 등 여러 조직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민자치회가 출범한다고 해서 기존 단체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그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각 단체의 경험과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 현안을 발굴하고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복지 문제는 복지 관련 단체와, 마을 환경개선은 주민단체와, 지역경제 활성화는 상인회와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각 단체가 가진 장점을 연결할 때 지역사회 전체의 역량도 커질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모든 일을 혼자 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역량을 하나로 연결하는 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역할은 주민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주민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사업 선정부터 예산 집행, 추진 결과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위원 몇 명의 의견이 주민 전체의 뜻인 것처럼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주민자치회가 주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참여와 권한 확대만큼 책임과 투명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제 완주군도 주민자치회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운영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완주군 13개 읍·면은 인구구조와 생활환경, 지역 현안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획일적인 사업과 운영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자치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주민총회에서 선정한 사업을 주민참여예산과 연결하는 협의체계를 마련하고, 주민자치회의 사업 추진 결과를 주민에게 공개하는 평가체계도 검토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의 역량 강화도 중요하다. 주민의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며 지역의 문제를 정책으로 연결하려면 자치계획 수립, 예산 이해, 주민 소통, 회의 운영 등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행정 역시 주민자치회를 단순한 행사 협조 조직으로 바라보지 말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의 대상으로 존중해야 한다.
주민자치회 또한 행정의 지원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조직에서 벗어나 주민의 생활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 주민자치회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회의를 몇 번 개최했는지, 행사를 얼마나 열었는지보다 주민이 제안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됐는지, 주민총회에서 결정한 사업이 얼마나 실행됐는지, 주민의 참여와 만족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살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행정의 하부조직도 아니고 행정을 대신하는 기관도 아니다. 주민의 의견을 모으고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며 행정과 지역단체를 연결해 주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민참여기구이다.
결국 주민자치회의 가치는 조직의 규모나 위원의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얼마나 참여하고, 지역의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며, 주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에서 나온다.
이제 주민자치회는 회의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직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 현장에서 역할을 증명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회의를 위한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자치회, 행사를 위한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바꾸는 주민자치회가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의 주인은 주민이다. 주민의 목소리가 마을의 결정이 되고, 그 결정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때 주민자치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주민자치회가 존재해야 할 진정한 이유이며, 완주군 주민자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