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게서 배우는 교훈

2013-06-13     채행무 시인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노자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라.”고 역설하였다.
  물은 유연하다. 네모진 그릇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된다. 이처럼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본질은 변치 않으면서 순응한다. 또한 물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평상시에는 골이 진 곳을 따라 흐르며 식물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위로한다. 그러나 물이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넘어뜨린다. 그리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것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누가 이처럼 낮은 곳에 있고 싶어 하겠는가만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넓은 바다다. 
  물은 모든 생물의 생존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서양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 하였다. 또한 그리이스의 철학자ㆍ정치가ㆍ시인ㆍ생리학자인 엠페도 클레스는 흙(土), 공기(風), 불(火)과 함께 물(水)을 만유의 원소라고 하는 4원소설(四元素說)을 주창하였다. 물은 과학적으로는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며, 상온(常溫)에서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한 물질이면서도 자연 상태에서 액체, 고체, 기체로 바뀌는 유일한 물질인 것이다. 
  지구의 지각이 형성된 이래 물은 지구 표면적의 4분의 3을 바다, 빙원, 호소(湖沼), 하천의 형태로 차지하고 있는데 이 물을 모두 합치면 약 13억 3천㎦에 달한다고 한다. 또 지구내부의 흙이나 바위 속에 지하수의 상태로 약 820만㎦가 존재한다고 하며, 이중 약 1만 3천㎦가 수증기가 되어 대기 속에서 구름이나 안개가 되고 눈,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하는데 이것을 물의 순환이라고 한다. 
  물은 용기 모양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자유형이다. 어디나 들어가고 나오는 무단출입자이다. 심지어 인체 내에 미세한 모세혈관에도 출입할 수 있다. 성서에는 물이 순환함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 즉,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욥기 36:27-28]
  물은 청소부이다. 어디서나 무엇이든 더러워지면 깨끗이 씻어 내린다. 물은 회생이다. 대지에 단비가 내리면 모든 식물이 회생한다. 물은 소방서이다. 가정이나 산에 불이 나면 물이 있어야 불을 끌 수가 있다. 물은 합성이다. 어느 것이든 물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은 겸손하다.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흐리기 때문이다. 물은 용감한 장군 같다. 흐르면서 소용돌이 치고, 산꼭대기에서 다이빙하며 떨어져도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물은 때론 악마로 돌변할 수가 있다. 물이 평상시는 온유하지만 일단 화가 나면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재앙이다. 성서를 보면 지금부터 4,000년 전에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홍수로 쓸어버린 노아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기 6-8) 이런 참혹한 해일이나 홍수가 나지 않도록 물에게서 겸손의 미덕을 배우면서 한 방물의 물도 아껴 쓰고 소중하게 다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느 생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도 감정이 있어 음악 속에서는 눈꽃모양이 되고, 화나 나면 찌그러진다고.
  그렇다. 한 방울, 한 방물 떨어지는 낙수는 바위를 뚫는다. 이와 같이 물이 가진 지구력과 인내력을 우리도 본받자. 따라서 물은 생명자원인 것이다. 물이 없이는 모든 만물은 존재 할 수 없다.  물 쓰듯 쓰는 물이 아니라, 돈 쓰듯 아껴 써야 하는 게 물이다. 생활 속의 물절약ㆍ물사랑 정신이 정착돼야 한다. 작은 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듯, 일상의 작은 실천이 한데 모이면 엄청난 양의 물이 절약된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채행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