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 문화재를 찾아서 올래 길 개척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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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 문화재를 찾아서 올래 길 개척 탐사
  • 엄범희 기자
  • 승인 2010.07.1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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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되어가는 역사, 문화재들 어린이들의 가슴에 심다

 

정읍 칠보초등학교(교장 송태신) RCY 단원과 옹동초등학교(교장 김창현) RCY 대원들은 칠보면에 자랑거리인 문화재들을 찾아 탐사해 봄으로써 조상의 슬기와 고장에 담긴 얼을 어린이들의 가슴에 심어주기위하여 칠보 문화재를 따라 미니 올래 길(제 1코스 8 km)을 개척했다.

칠보초(인솔교사 김해선) 어린이 9명과 옹동초(인솔교사 이병인) 어린이 5명은 올래 길 제 1코스 8km로 칠보초등학교를 출발하여 송현섭님의 노래비, 시산명월, 유상대, 왕비유지, 고현향약, 남천사, 연화동 공원묘지 삼층석탑, 정극인 묘지, 무성서원, 태산선비 문화 체험관, 정극인 동상, 상춘곡 비, 후송정, 피향정 등을 코스로 개척했다.

송현섭님의 노래비는 어머님에 대한 효성스러운 마음을 시로 읊었다고 하며 그 어머님 102세에 별세하실 때까지 효성을 다하여 모셨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효성을 읊었던 시를 비에 새겨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였으며, 시산명월은 송산리 뒷마을의 시산에 달이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 아름다워 유생들이 그 풍경을 보며 마음의 여유를 즐기던 곳이고, 유상대는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다가 지치거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 이곳에서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서로에게 잔을 권하며 풍유를 즐기던 곳이다.

도봉사(보물 제437호) 조선태조 때 김회련에게 내린 공신록권과 왕지(보물 438호)가 소장되어 있던 곳이며, 왕비유지는 호남권 최초로 왕비의 유지를 받은 경순왕후(단종의 왕비)에게 내려진 유지로 그 생가터와 몇 가지 비문이 남아있어 보건계획에 의하여 현재 보건중이며, 고현향약(보물 1181호)은 고현동 사람들의 자치규약으로 서로 돕는 협동의 약속과 규약을 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이다. 남천사는 조선시대 유학자 김후진, 안의, 손홍록, 김만정, 김주현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고장에서 학문에 몰두하던 유생들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안의와 손홍록은 임진왜란 때 조선실록을 지켜낸 학자로도 유명하다.

삼층석탑(문화재 158호)은 고려시대 3층 돌석탑으로 고려시대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문화재이며, 무성서원(사적 166호)은 신라 말 태산 군수로 재직한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은 태산사가 그 시초이며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등을 함께 모신 사당이자 조선시대 사립학교 였다.

태산선비 문화 사료관은 태산문화 누정, 향교 서원, 사우, 불교유적, 김동수 가옥등을 전시하였으며 소장유물 11건 21점을 전시하고 있다.

상춘곡(정극인-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는 가사문학) 비는 우리나라 최초 가사문학 ‘상춘곡’을 쓴 정극인 기념비이며, 송정과 후송정은 1899년 7광 10현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하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칠보가 또 다시 비상의 날개를 펼친 물테마공원에 들렀다.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1학년부터 6학년에 이르는 14명의 어린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칠보의 보물들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많은 효도비 들이나 문화재들이 보전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던 모습들이었다.

지금까지 무심하게 보아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면서 어린이들은 우리 고장의 자랑을 뿌듯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도청이나 시청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보존해 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다.
/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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