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CEO들 잇단 추락…'성추문 수렁' 주의보
상태바
글로벌CEO들 잇단 추락…'성추문 수렁' 주의보
  • 투데이안
  • 승인 2010.08.17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굴지 기업의 수장들이 잇따른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기업윤리강령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데, 경영자들의 윤리의식은 오히려 갈수록 퇴보하는 모양새다.

지난 6월 호주의 유명 고급 백화점인 데이비드 존스사(社)의 최고 경영자(CEO)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사퇴했다. 이어 이달 초 세계최대의 컴퓨터 장비업체인 미국 휴렛패커드(HP)사의 CEO가 하청업체 여직원을 성희롱으로 한 혐의 등으로 전격 사임했다.

데이비드 존스의 CEO인 마크 매키네스(44)는 한 여성 직원과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문제가 불거지자 사임했다. 데이비드 존스 이사회에 따르면 매키네스는 회사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질렀는데, 이에 매키네스는 이사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즉각 사퇴하겠다는 뜻을 이사회에 전달했다.

매키네스는 CEO이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중대한 판단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공식 인정한다면서, 이로 인해 여직원과 동료, 가족, 주주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호주 현지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매키네스는 같은 직장 여직원 프레저 키크에게 구강성교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해대며 디저트를 맛보게 강요했다. 또한 키크의 옷 안쪽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상의 속옷 끈을 만지작거렸으며, 이후에는 성관계를 암시하며 본다이에 위치한 자신의 자택으로 동행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키크는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데이비드 존스 이사회에 매키네스의 잘못에 대한 불만을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사건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키네스는 지난 2003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데이비드 존스의 CEO로 발탁돼 구조조정과 공격적인 비용 절감을 주도하며 활약해왔으나, 직장 내 성희롱으로 불명예 사임하게 됐다. 현재 그의 후임으로는 승진한 자사 관리팀의 폴 자흐라이다.

매키네스의 사임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이달 6일, 마크 허드 HP CEO(53)가 역시 성추문에 휩싸여 전격 사임했다.

HP 이사회는 지난 6월 한 하청업체 여직원 조디 피셔로부터 허드가 자신을 성희롱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받아 허드를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허드가 이 여직원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경비지출서를 조작했으며 갖가지 명목으로 이 여직원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임금을 지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허드는 자신이 제출한 경비지출서들이 합법적인 사업상 비용 내역을 담고 있다며, 일부 지적된 실수들은 업무보조원의 실수로 자신도 모르게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HP 이사회는 허드가 사내 성희롱 규칙을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품행 규정을 위반해 회사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며 결국 그에게 사임을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5년 4월 HP CEO에 취임한 허드는 임기 5년간 HP의 시장가치를 약 두 배 이상 끌어올린 인물로, 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최근 수 주간 1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성추문으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관련 협상도 파기됐고 결국 사임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는 퇴직금으로 현금 및 주식으로 약 2800만 달러(331억 원 상당)를 받을 예정이다.

허드의 사임 이후 자신의 신분을 공개적으로 밝힌 피셔는 변호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허드와 성적 관계를 맺은 적은 없다고 강조하고 “이번 사건으로 허드가 직장을 잃었다는 데에 놀랐고 슬펐다”며 “이는 내가 절대 의도한 것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피셔는 전직 준성인용 영화배우 출신으로,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컴퓨터 기기업체 HP 마케팅 부서와 관계된 일을 하면서 허드를 알게 됐고 HP주관 행사에 참석한 최고경영자들을 소개해주는 행사를 맡아 건당 최대 5000달러(600만 원 상당)를 받아왔다고 한다.

한때 판매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그녀는 한 민간 부동산업체에서 간부를 지내기도 했는데, 현재는 아들을 키우는데 열중하며 사는 50대 싱글맘이다.

현재 허드는 피셔와 합의를 본 상태인데, 허드가 합의금으로 피셔에게 건넨 액수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 밖에도 해리 스톤사이퍼 보잉사 전 CEO(73)와 스티븐 헤이어 스타우드호텔 전 대표 (58) 역시 여직원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사임하는 등 기업 CEO들의 불명예 퇴진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스톤사이퍼는 재임 당시인 2005년에 한 여성 임원과 혼외관계를 지속하다가 이사회에 적발됐는데, 당시 보잉 이사회는 그의 이러한 행동이 “CEO로서 그의 판단력과 리더십을 해칠 수 있는 것”이라며 스톤사이퍼의 해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스톤사이퍼는 취임 이후 주가를 절반 이상 끌어올리며 뛰어난 성과를 이뤄냈던 인물로, 보잉의 대규모 비리사건 직후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매년 윤리강령에 서명토록 하는 등 회사 이미지 제고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보잉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헤이어는 지난 2007년 부하 여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는 투서가 발단이 돼 해고된 바 있다.

이제는 CEO에게 높은 경영성과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사생활도 요구하는 시대가 온 듯하다. 과거에는 좋은 실적을 내는 CEO의 문란한 사생활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는 일쯤으로 여겨졌었으나, 더 이상 이러한 것이 통하지 않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어쩌면 기업 경영자들의 윤리의식의 퇴보를 지적하기보다는 CEO들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공개되고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만한 일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