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번 임신해 아기 53명 낳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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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번 임신해 아기 53명 낳은 여자
  • 투데이안
  • 승인 2010.12.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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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자의 유럽야화<25>

중세유럽 여성들은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임산부들이 성당에 가서 늘 신앙에 매달리며 순산을 기원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끝이 없자 부적까지 지녔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 당시엔 병원이 따로 없었고, 조산원들의 도움으로 출산을 했는데 출산 중에 많은 여인들이 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 있게 다산을 한 여인이 있었다. 언젠가 조산원 얘기 때 잠시 이름을 언급했던, 바로 독일에서 아이를 제일 많이 낳은 여인 바라라 스트라츠만(1448-1503)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참 신뢰성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독일 남서쪽의 바덴뷔텐베르그주에 있는 뵈닉히하임 출신이다. 처녀 때 성은 ‘쉬모쳐’였지만 결혼한 뒤 남편의 성을 따라 ‘스트라츠만’이 된다. 부부가 죽고 난 뒤 사람들은 부부를 기념하는 애칭을 ‘에와 쉬모쳐 여인‚ 아담 스트라츠만’ 을 붙여줬는데 성서에 나오는 ‘아담’(남자) ‘에와’(여자)의 상징적 뜻이 담겨있다.

도대체 아이를 몇 명이나 낳았을까? 자그마치 53명을 낳았다고 한다. 전설이 아니라 엄연히 문서에 기록된 얘기다. 겨우 55년을 산 여자가 어떻게 53명이나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매년 임신했단 말인가? 여기에 또 기록이 있다. 그녀는 29번 임신을 하고도 53명을 낳을 수 있었다.18번은 정상출산, 즉 아기 하나만 낳았다. 5번은 쌍둥이(Zwillinge), 4번은 3쌍둥이(Drillinge) 그리고 1번은 6쌍둥이(Sechsinge), 남은 1번은 7쌍둥이(Siebenlinge)였다. 계산해 보자. ‘18+10+12+6+7=53’이 된다.

1500년경에 그녀가 살던 뵈니스하임 교회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의 그림 앞에는 ‘독일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은 쉬모쳐 여인, 그녀의 남편과 53명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이 있었다. 그림의 왼쪽에는 아버지가 38명의 아들과, 오른쪽 엄마 곁에는 15 명의 딸이 서 있었다. 1650년경에는 필립 얀센이 ‘독일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은 쉬모쳐여인, 그녀의 남편과 53명의 아이들’을 동판화로 만들었다. 뷔텐베르크시 도서관에 이 동판화의 견본이 남아 있다 한다.

이 쉬모쳐여인에 대해 회의적인 눈으로 주시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오늘날의 의학자들이다. 헤르만 크리크 의과 교수나 라인하르트 의대 교수 등이다. 이들은 쉬모쳐 여인의 출산에 대해 복잡한 전문 의학 용어로 충분히 설명한 뒤, 다음과 같이 일반적인 견해를 말했다. “55살 먹은 여인이 29번 임신하는 출산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여인들이 출산한다는 것은 생명 위험이 매우 컸던 일이었는데 53명을 낳으면서 그 여인이 그렇게 건재 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더 믿을 수 없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쌍둥이 낳는 것 또한 쉽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 “한 80명 중에 한 명꼴로 쌍둥이가 나오고, 3쌍둥이는 7000 명중에 하나 꼴이다. 6~7쌍둥이는 아주 드물어 비유하자면 복권 당첨 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1498년에 법무관 프리드리히 도임링이 자필로 작성한 ‘쉬모쳐 여인이 53 명의 어린이를 낳은 것은 확실한 史實(wahrhaftige Historia)’이라는 문서가 남아있다. 호른베르크성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공증서류에도 쉬모쳐 여인이 자녀 53명을 낳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뵈니그하임 사학자 쿠르트 사르토리우스는 “산부인과적인 견해로 보면 상당히 의문이 갈지도 모르지만, 인간의 삶에는 예외가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쉬모쳐 여인이 53명의 아이를 낳은 것은 사록에 기록된 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또 ‘이 아이들은 그 당시 뵈니스하임 부근에 있었던 남녀 수도원에서 나온 아이들’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소리’라고 정면 반박한다. 그는 “당시 부근에 수도원은 있었을지라도 시대적 간격이 있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거기엔 남자 수도원만 있었다”며 실제냐, 허구냐는 질문 자체를 일축한다. 여기에 또 첨부되는 것은 1509년 왕 막시밀리안1세(1459–1519)가 당시 이 도시 부근에 잠시 머물렀을 때 누군가로부터 이 여인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언급이 기록집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역사가들이 강조한다.

그 외에도 오늘날 의학적 관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다분한 두 여인이 있다. 하나는 러시아에서 한 농부 여인(1707–1782)이 69명의 아이를 낳아 ‘세계 최고의 다사녀’로 간주되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1990년대에 칠레에 살았던 어떤 여인이 55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설이다. 위의 여인들은 쉬모쳐 여인의 53명보다 더 많으니 결국 쉬모쳐 여인은 독일에서 최고이지 세계 순위에선 3번째가 되겠다. 러시아 여인과 칠레 여인에 대한 기록은 필자가 읽지 못했기에 잘 모르겠지만 쉬모쳐 여인은 전설로 내려 오는 얘기도 아니고 분명히 문서실에 기록된 사실이기 때문에 우린 믿어야 되지 않을까?

한번 살펴보자. 이 사실이 실제냐, 허구냐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까지 제기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지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 이 시대에도 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걸 생각한다면 기록에도 나와 있는 이 사실을 오히려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수십 명의 아이들을 낳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 독일의 한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알고 지냈던 사람 중에 한 독일 노부부가 있었다. 이들도 아이 12명을 낳아 길렀다. 그들이 바로 우리들 위의 세대다. 이런 고리를 한국의 산아제한 시대에 한번 접목해 보자. 한국이 한창 산업화로 치닫던 70년대쯤에는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 아래 산아제한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당시에 아이 셋 만 낳아도 너무 많다는 표현을 할 정도였고, 국가로부터 혜택도 은연중에 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세월이 흘러 그런 날도 지나고 이젠 한국도 어떻게 변했는가? 시골엔 아예 아기 울음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젠 국가적 차원에서 “제발 아기 좀 낳아 주십시오, 그럼 온갖 혜택을 다 드리겠습니다”고 하는 정반대가 된 시대다. 아무튼 생명은 고귀하고 아름답기에 낳을 수 있으면 바바라처럼 많이 낳는 것도 장려 받을 미덕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만약 바바라가 1970년대에 한국이란 땅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아기를 낳았었다면 그녀는 가족계획에 완전히 실패한 여자에 속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세금 혜택은커녕 오히려 아이 많이 낳은 ‚죄’ 때문에 세금을 많이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그저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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