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미국진입, 지금이 기회…'마더'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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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미국진입, 지금이 기회…'마더'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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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1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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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할리우드의 신년 초는 전년도에 대한 평가로 그득하다. 박스오피스 연간 통계를 통해 전년도의 상업적 성과와 문제점을 돌아보고, 각종 매체 및 평론가들의 베스트 10과 비평가협회상 등을 통해 전년도의 예술적 성과를 치하한다. 그러면서 상업과 예술의 총결산인 2월27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향해 모든 업계가 달려간다.

2010년의 상업적 성과는 찾아보기 쉽다. 박스오피스모조(www.boxofficemojo.com) 등 이 같은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는 흔하다. 그렇다면 예술적 성과는? 이곳저곳 매체도 많고 단체도 많아 딱히 기준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개중 많은 영화학자 및 비평가들이 10편의 영화를 꼽는 AFI(American Film Institute) 베스트 10을 참조하는 방식이 추천된다.

올해의 AFI 베스트 10 선정작들은 다음과 같다. ‘블랙 스완(Black Swan)’ ‘더 파이터(The Fighter)’ ‘인셉션(Inception)’ ‘아이들은 괜찮아(The Kids Are Alright)’ ‘127시간(127 Hours)’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더 타운(The Town)’ ‘토이 스토리3 (Toy Story 3)’ ‘트루 그릿(True Grit)’ ‘윈터스 본(Winter’s Bone)’(ABC 순)

모두 공개 즉시 비평계 찬사를 받은 작품들이자 제83회 아카데미상 작품상의 유력 후보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리스트를 보면 한 가지 뚜렷한 경향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이 흥행 성공작들이기도 한 것이다. 2010년 북미 흥행 1위를 기록한 ‘토이 스토리 3’와 현상적 흥행돌풍을 일으킨 ‘인셉션’은 그렇다 치자. 상업적 요소가 풍부한 영화들이니 운대만 잘 맞으면 얼마든지 일대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별달리 흥행 요소가 없는 나머지 영화들까지도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카데미 작품상 빨’로 7428만3625달러를 벌어들인 게 최고 흥행기록이었던 코엔 형제의 웨스턴 ‘트루 그릿’은 1월6일(현지시간) 현재까지 9543만22달러를 벌어들였다. ‘아카데미 작품상 빨’ 따위 없이 본인들 최고흥행기록을 이미 경신한 상태며, 최종수익은 1억3000만 달러 선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 이야기를 담은 ‘소셜 네트워크’는 애초 3000만~4000만 달러 선에서 흥행을 그치리라는 예상이었지만, 1월6일 현재까지 그 배가 넘는 9342만4261달러를 벌어들였다. 벤 애플릭이 감독과 각본, 주연을 맡은 ‘더 타운’도 닳고 닳은 은행 강도 이야기에 별다른 스타급 출연도 없었지만 역시 현재까지 9218만6262달러를 벌어들이는 쾌거를 거뒀다.

‘블랙 스완’과 ‘더 파이터’는 각각 12월3일과 10일 개봉작이므로 아직 흥행 초기인 데도 벌써 각각 5310만5493 달러와 5084만4442달러를 벌어들인 상태다. 최종적으로는 둘 다 7000만 달러 이상 흥행이 예상되며, 아카데미상 수상이 가능하다면 추가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까지, AFI 베스트 10 중 7편이 중급 흥행 기준인 5000만 달러 돌파작들이다. 블록버스터급 흥행 기준인 1억 달러 돌파 및 돌파예상작도 3편이나 된다. 나머지도 만만치는 않다.

‘아이들은 괜찮아’는 2081만1365달러 수익으로 극장흥행을 마쳤지만, 제작비가 약 4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는 제작비 대비 5배 수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짭짤한 실수익이 기대된다. ‘원터스 본’ 역시 현재까지 624만9623달러를 벌어들인 게 수익의 전부지만, 그 제작비는 200만 달러가 채 못 됐다. 극장과의 요율, 마케팅비를 감안하더라도 이미 극장흥행에서 손익분기는 넘었다. 나머지 해외 배급수익 및 DVD 등 2차 시장 수익은 그대로 실수익으로 남게 된다.

결국 AFI 베스트 10 선정작들 중 극장흥행에서 손익분기를 넘지 못한 영화는 대니 보일 감독의 ‘127시간’뿐이라는 얘기다. 1800만 달러를 투입해 현재까지 1060만7635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 정도 수치면 해외배급과 2차 시장 수익을 더했을 때 손익분기를 넘을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AFI 베스트 10 선정작들 중 ‘진정한 흥행실패작’은 단 한 편도 없고,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일대 흥행을 거둔 히트작들이 넘실대고 있는 셈이다.

이쯤에선 AFI의 ‘취향’을 의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 흥행성공작들을 편애하는 태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당장 2009년만 하더라도 베스트 10 선정작들 중 5000만 달러 이상 흥행작은 4편에 불과했고, 명확한 흥행실패작인 ‘메신저’ ‘시리어스 맨’ ‘싱글 맨’ ‘슈거’ 등도 포함돼 있었다. 2008년도 마찬가지로 ‘웬디와 루시’ 등 흥행은커녕 제목도 감감한 영화들이 끼어 있었다. 또한 이번 AFI 베스트 10 선정작들은 여타 비평가들의 베스트 10이나 메타크리틱 차트, 어워즈데일리 차트 그리고 미국영화제작자협회 베스트 10과 별반 다르질 않다. ‘튀는 선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결론은 간명하다. 적어도 2010년에 한해서는, 비평적 평가가 높았던 영화들이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단 AFI 베스트 10에 선정된 영화들뿐이 아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사이코 스릴러 ‘셔터 아일랜드’, 영국 왕 조지6세 이야기를 담은 영국영화 ‘왕의 연설’ 등 상업적 매력이 부족하다 평가됐던 비평적 성공작들도 괄목할 만한 상업적 성과를 냈고, 상업적 요소가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디 아더 가이즈’ ‘레드’ ‘라스트 엑소시즘’ 등 비평적 평가가 높은 영화들이 흥행에서 호조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비평적 평가가 고르지 못했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아이언 맨 2’ 등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그저 ‘우연히’ ‘어쩌다’로 보기엔 너무 사례가 풍부하고 경향성이 짙다. 그리고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한 요인들도 눈에 띈다.

먼저 3D 혁명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지난해 말 공개된 ‘아바타’ 광풍으로 할리우드는 2010년 내내 3D 몸살을 앓았다. ‘타이탄’처럼 3D 계획이 전혀 없었던 영화들까지도 일단 블록버스터라는 형식을 띠고 있으면 후반작업 과정에서 급조해 3D로 만들어버렸다. 3D가 한창 떠오른 트렌드인 탓도 있지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도 있었다. 일반 2D 상영관의 평균입장료는 2010년 기준 약 7달러95센트인데 반해, 3D 상영관 평균입장료는 약 11~12달러 선으로 추산되고 있다. 같은 영화를 상영하고도 40%를 넘어서는 추가수익이 발생하니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가 광풍으로까지 진행될 정도로 번지다보니 오히려 역반응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큰 파이를 노리지 않는 중급 상업영화들, 예컨대 ‘피라냐 3D’나 ‘레지던트 이블 4: 끝나지 않은 전쟁 3D’ ‘쏘우 3D’ ‘스텝 업 3D’ 등까지도 모조리 3D로 범벅을 해놓자 대중의 외면이 시작됐다. 딱히 큰 관람욕구가 생기지 않는 중급 상업영화들까지도 40% 이상 비싼 입장료를 받으니 반발심 탓에 그만큼 관람률은 떨어지게 됐다는 것. 실제로 2010년 한 해 동안 할리우드 영화가 북미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3D의 높은 입장료 탓에 역대 2위인 105억6520만 달러 선을 기록했지만, 관람객 수는 무려 15년 전인 1995년 이후 최저수치 13억2900만 명 선에 그쳤다. 전년도 대비 무려 5.9% 하락이다.

이 같은 반발심 탓에 반사이익을 본 게 바로 ‘정상적’ 입장료를 받는 2D 영화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3D 진원지라 할지라도 현재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진이 여전한데다 구직단념자까지 포함한 2010년 실업률은 무려 16.7%까지 치솟은 상태다. 그럼에도 영화 관람을 중심으로 짜여진 미국인의 문화소비 습성은 크게 바뀔 리 없고, 그러다보니 ‘묻지마 3D’화 되고 있는 상업영화들 대신 상업적 매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상적’ 입장료를 받는 2D 영화들에 관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비평적 성공작=흥행 성공작’ 구도가 우연찮게 나와 버렸다는 얘기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최강의 광고탑 아카데미상이 지난 수년 간 꾸준히 ‘작은 영화들’을 지지하며 ‘분위기’를 잡아놓은 상황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미국인디영화 빅뱅 시기 영화계에 입문한 이들을 대거 심사위원단으로 끌어 모은 아카데미상은 근래 들어 대중친화적 방향성을 일정 부분 제어해왔다. 대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슬럼독 밀리언에어’ ‘허트 로커’ 등 작은 규모의 비평적 성공작들에 작품상을 안겨줬다. 그 광고 효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7428만3625달러, ‘슬럼독 밀리언에어’ 1억4131만9928달러 등 인디급 영화들을 대거 대중에 노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여름 개봉 관계로 극장흥행을 일찍 접어 1640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이는데 그친 ‘허트 로커’마저도 DVD 시장에서는 수 주간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다보니 미국 대중은 아카데미상 향방과 큰 상관없이 ‘주노’ 등 작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 딱히 상업적 요소가 짙지 않은 비평적 성공작들까지도 포용하게 됐고, 이 같은 흐름이 2010년 들어 두드러지게 가시화됐다는 것.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영화작가들 자체가 달라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994년 ‘펄프 픽션’ 쇼크 이후 미국영화계는 거대 스튜디오 영화와 소규모 인디 영화라는 두 가지 흐름이 고착화됐다. ‘펄프 픽션’을 필두로 인디 영화가 작가주의 경향 내에서 독창성, 실험성, 과감성 등을 무기로 시장 파이의 빈틈을 차지했다면, 스튜디오 영화는 미국을 넘어 세계시장을 바라보며 범세계적 흥행 코드를 찾아내려 애썼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했다. 인디 영화는 더욱 극단적으로 ‘인디 영화 티’를 내려 발버둥 쳤고, 스튜디오 영화 역시 더욱 더 개성을 잃고 심지어 ‘미국’이라는 국지적 특성까지도 져버린 채 판타지 월드 묘사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적어도 2010년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이 같은 양극화 경향은 상당부분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주의 경향을 지닌 영화감독들이 조금씩 돌아서고 있는 추세다. 대중에게로 한 발짝 더 다가서, 작가적 개성과 대중적 코드 사이 아슬아슬한 지점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픽사 스튜디오나 크리스토퍼 놀런 같은 경우야 애초 이 같은 두 마리 토끼잡이의 귀재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극단적 개성을 지녔던 코엔 형제, 대런 애러노프스키, 데이비드 O 러셀, 데이비드 핀처 등까지도 그렇게 방향을 이동시키고 있다.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코엔 형제의 ‘트루 그릿’, 러셀의 ‘더 파이터’ 등은 모두 미국 개봉 시 ‘작가적 개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코드 자체가 원만하고 대중적이며 알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진중한 주제 탐구,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 탄탄한 각본 구성력 등은 그대로 남아 뛰어난 메인스트림 영화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 이제 막 두 번째 영화를 연출한 벤 애플릭만 하더라도 데뷔작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보여준 장르 재해석 대신 보다 장르적 관습에 충실한 ‘더 타운’을 선택했다. 대신 본래 지닌 무겁고 굵직한 연출 선은 고스란히 남아 ‘진중한 상업영화’로 재탄생됐다.

이들처럼 눈에 띄는 방향 선회는 아니지만, 대런 애러노프스키나 마틴 스코세이지 등도 자신의 작가적 개성과 대중적 코드 사이 접점을 찾아내려 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몇 년간을 함께 놓고 보자면 가이 리치(셜록 홈즈), 스파이크 존즈(괴물들이 사는 나라), 닐 라뷰트(레이크뷰 테라스) 등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언급한 경제 불황의 여파 탓이다. 경제 불황이 지속될수록 작가주의 감독들의 극단적 개성을 오히려 셀링 포인트로 삼는 아트하우스 시장, 극단적 개성을 지닌 상업영화들을 우대하는 마니아 시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국조차도 그 대표적 예가 된다. 1990년대 초중반 예술영화 관객이 급증하다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예술영화 시장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모두들 ‘살아남기 위해’ 방향성 전환을 꾀하고 있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가주의 또는 작가주의적 상업영화 감독들의 이 같은 변신을 대중이 따뜻하게 맞아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내놓는 콘텐츠가 자기복제형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지친 미국 대중에 일종의 대안적 상업영화로 받아들여져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비평계 역시 이 같은 방향성에 동의해 ‘분위기’를 띄워주고 있다고 봐야한다. 실제로 지난 1년간을 돌아봐도 여전히 극단적 개성을 보여준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는 딱히 지지하고 있질 않다.

미국영화계의 이 같은 경향은 한국영화계도 반드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소 먼 얘기 같아도, 사실상 한국영화산업의 미래와 밀접한 연관을 지닐 수 있는 얘기다.

돌아보면 ‘한국이야말로’ 지금 미국이 밀고 있는 작가주의적 상업영화 감독들의 천국과도 같기 때문이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등 그 대표주자들부터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은 국내에선 이미 1990년대 말엽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음에도, 이상하게도 구미 지역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질 않았다. 때로는 아예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구미 평단이 해외영화를 가늠하는 시각이 지극히 예술지향적 코드에 종속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평단 반응에 크게 지배받는 아트하우스 관객층 특성 탓에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2004년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38만788달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언급했듯, 자국 영화작가들의 노선 선회와 더불어 각종 시장 상황들이 변화한 탓에 이 같은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들은 시장과 평단 양쪽을 모두 흔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2010년 상황만 봐도 그렇다.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기록한 해외영화는 스웨덴 스릴러 ‘용 문신을 한 소녀’였다. 대형배급 없이, 그리고 아카데미상 효과조차도 없이 오직 비평계의 뜨거운 관심만으로 1009만4221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속편인 ‘불을 가지고 논 소녀’까지도 763만7309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지금 같은 시기야말로 한국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다. 평단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탓에 평단의 일대 주목을 받으며 소규모 아트하우스 시장에 입성, 해당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나아가 ‘용 문신을 한 소녀’처럼 500만~1500만 달러 사이 흥행구도가 나오는 인디영화 시장까지도 침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그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2009년작 ‘마더’의 경우다. ‘마더’는 국내에서의 찬사와는 달리 구미·유럽 등지에서는 따스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칸국제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 진출에 실패했고, 지난해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지명에서도 일찌감치 떨어졌다. 사실상 굴욕의 연속이었다. 봉준호와 같은 작가주의적 상업영화 감독을 받아들일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2010년 들어 미국 제한상영에 들어가자 ‘마더’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보스턴영화비평가협회상, 온라인영화비평가협회상, 캔사스시티영화비평가협회상 등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LA영화비평가협회상에서는 주연배우 김혜자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까지 거뒀다. ‘마더’는 2010년 한 해 동안 공개된 해외영화 중 올리비에 아사야의 ‘카를로스’,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와 함께 가장 높은 칭송을 받은 영화가 됐다.

미국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위 3편의 해외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장르에 기반한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들이라는 점이다. ‘카를로스’는 실존 테러리스트 소재 스릴러이며, ‘예언자’는 감옥을 무대로 한 갱스터 영화, ‘마더’는 올해 미국에서도 ‘원터스 본’ 등을 통해 관심을 모은 이른바 ‘루럴 느와르(Rural Noir)’다. ‘마더’는 현재 DVD 출시 등을 통해 미국 대중의 진정한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한국영화계는 미국시장 진출이라는 화두를 놓고 한 가지 동일한 경향을 보여 왔다. ‘한국’과 ‘미국시장’이라는 코드를 늘 같이 놓고 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할리우드용 영화라든가 어찌됐건 한국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할리우드용 영화 등으로 노선을 잡아왔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한류를 통한 스타산업의 융성 탓에 여력이 생긴 대중문화계가 ‘최종고지’인 미국시장에 한국배우를 팔기 위해선 그 방법 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과 기술력으로 승부하려면 ‘개성’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여기서 한국적 색채가 유효하게 작용하리라는 잘못된 계산 탓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의 냉담한 반응은 당연했고, 국내에서마저 심형래와 같은 특수코드를 제외하곤 모두 흥행에서 뼈저린 참패를 겪어야 했다. 한국스타가 나오는 건 맞지만, 할리우드를 바라보고 만든 생경한 코드 탓에 리스크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한국 주류 흥행코드인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를 그대로 미국으로 보내도 제대로 주목 받으며 상식적 시장 진입을 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평단의 관심을 통해 제한시장 내에서 톡톡한 추가수익을 거둬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출연 스타들도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굳이 스타 띄우려 미국시장 진출용 영화를 만드는 무모한 도박 대신, 자연스럽게 ‘할리우드서 불러서’ 갈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언급한 ‘용 문신을 한 소녀’ 주연배우 누미 라파스도 이미 ‘셜록 홈즈’ 속편과 ‘에이리언’ 프리퀄 출연이 확정된 상태다.

결국 구미의 대박급 메인스트림 시장을 목표로 한 블록버스터들은 홍콩 골든하베스트사의 ‘캐논볼’ ‘닌자 거북이’나 뤽 베송을 진두지휘로 삼은 프랑스 파테사 예처럼 현지 조건에 정확히 맞춰 승부를 걸어보고, 나머지는 그대로 한국시장 분위기에 맞는 영화들을 내밀어도 비평적 관심을 통해 제한시장 내에서 짭짤한 추가수익을 거둬내고 스타산업 확장도 이룰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국내 시장의 리스크도 줄이면서, 동시에 해외 시장의 진입장벽도 낮아지는 두 마리 토끼잡이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원만하고 순방향적인 구도가 마련된 상황에, 허튼 계산으로 안 그래도 기반이 취약한 한국영화산업을 흔들어선 안 된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마더’의 대대적 성과로 한국영화는 현 시점 사상 가장 유리한 구미시장 진출 환경이 마련된 상황이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는 현명한 판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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