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술의 직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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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의 직업윤리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3.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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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진정 어떤 의사(醫師)가 훌륭한 의사일까? 그것은 의사 측에서 보는 시각과 환자 측의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꼭 이것이 이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년 전 일본에서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라는 설문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 ‘질병의 상태를 잘 설명해 주는 의사’가 66.6%로 압도적인 결과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환자가 자기 질병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미국의 ‘미네소타’ 의대 ‘오언.H.왕레시틴’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발표 했었다. 대부분의 미국 환자들은 신뢰할 수 있으면서 친절하고 솔직하며 진지한 의사를 바란다고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환자가 바라는 좋은 의사상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공통분모는 미국이나 일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학자들과 대학병원 당국자들의 종합된 의견은 환자들에게 ‘권위 있는 의사,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의사 친절하고 명랑한 의사’로 집약돼 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권위 있는 의사’라는 것의 한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일단은 객관적으로 박사(博士) 논쟁이 있을 법도 하다. 과연 박사라면 어느 나라 박사냐? 등 그것을 따지는 것은 사실 가소로운 일이다.
학문을 하는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의학박사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최고로 많다는 통계다.
의학 박사가 최고로 많은 만큼 비례해서 직업윤리는 더욱 준엄해야 한다는 주문은 많기도 하다.
치료보다도 오히려 ‘따뜻한 친구역할’이 훨씬 효과적 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주사와 투약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부반응이 거세게 일기도 했던 것.
의사의 직업윤리가 또 강조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사회정화 차원에서 의료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고 하고 있다.
악덕 병원은 면허까지 취소할 계획으로 있다. 그렇다고 의료 부조리나 불친절을 의료기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의료 전달 체계를 개편하는 행정과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환자들의 의식도 바꿔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익(公益)을 자각한 의사들의 양식(良識)이 선행 돼야 한다.
여기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계율과 함께 인술(仁術)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케 된다. 작년과 올해 TV에서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주제로 다루는 드라마 들이 방영 됐다. 이 드라마들을 바라보는 중요 포인트는 병원도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고 의사는 경영자 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가슴 따뜻한 인간적인 의사 이어야 하느냐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싸움일 것이다.
이 논쟁에서 어느 한 편이 진실이고 정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 특히 잠재 환자들은 아무래도 후자를 택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TV 속 주인공 의사에게 감동하는 것이고 그런 전문의를 주위에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의사들은 그에 화답하듯 진정한 의사란 자기의 전문 의술을 펼쳐 환자 몸의 상처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봉사 정신 그것이 바로 인술(仁術)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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