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에 피는 꽃은 충심 어린 역사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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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 피는 꽃은 충심 어린 역사의 함성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4.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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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4월은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꽃의 달이다. 조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꽃은 4월 한 달 동안에 모두 피고 거의 다 져버린다.
세상에서 꽃보다 더 아름답게 왔다가 황홀하게 져 가는 목숨도 드물 것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을 보면서 한 가닥 유감이 없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승용차 깊숙한 뒷자리에 목을 묻은 이들의 가슴이나 꽃그늘 아래서 진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산골 아이의 가슴에도 어떤 슬픔과 고독은 서릴게다.
비록 느껴지는 모양과 빛깔은 다를지 모르나 꽃의 달에 느끼는 인간사라는 공통성은 마찬가지인 거라. 타고난 지혜와 영광의 상징인 솔로몬(Solomon)의 그것들과도 비길 수 없다는 한 송이 꽃의 지혜와 보편의 자유를 볼 때, 결단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없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틈날 때마다 심산유곡을 찾아들어 개구리, 도롱뇽을 잡아먹으면서 오래 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나 독사, 지렁이를 사들여 먹는 사람들이라도 문득 눈길을 던져 우연히 시야에 들어오는 꽃에 무엇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
한걸음만 물러서서 자기 모양을 바라본다면 몬도가네(MONDO)의 추태까지 보이지 않고 오래 살기보다는 순간을 살아도 제 모습을 잃지 않는 꽃처럼 사람답게 살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도 느끼게 되리라.
그리고는 지금의 자기 모습이 얼마나 고독하고 불쌍한 몸부림인가를 부끄럽게 느낄 수도 있으리라.
만약 한줄기 눈물까지 흘릴 수 있다면 그에게는 아직 구제 가능한 수준의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이리! 슬픔이나 고독은 감정의 사치가 아니다. 슬퍼해야 할 일에 마땅히 슬퍼할 줄 알고 고독 할 때 고독할 수 있다는 것은 진실로 사람다움이며 양심에 순종하는 갸륵함일 게다.
“비누는 몸을 씻어주고 눈물은 마음을 씻어 준다”라는 유대의 격언처럼 꽃의 4월에 한 번쯤 슬픔과 고독으로 마음을 씻는 것도 더욱 사람다워질 수 있는 길이 되리라.
피는 꽃과 지는 꽃을 보면서 마치 수풀 속 정갈한 슬픔과 고독이 우리 가슴에 서려 괼 수 있다면 그 생수로 마음의 때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 주변은 얼마나 정의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으랴? 가신 이들의 허덕이는 숨결로 곱게 씻긴 꽃이 피었다.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옛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꽃’이라 지목한 미당(未堂)의 시구(詩句)이기도 하다.
정녕 피어 흐트러지고 비바람에도 황홀하게 질 줄 아는 꽃의 생리는 분명 자연의 섭리지만 인간의 관여가 없을 수 있는가. 비록 해마다 반복되는 섭리라 할지라도 그 섭리를 타고 인간의 역사는 이루어져 왔지 않는가?
모든 꽃은 저 홀로 무심히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가신 이들의 더운 숨결과 목청.
그리고 몸짓대로 피는 것이리. 정녕코 우리의 산하에 피고지는 꽃들도 5,000년 우리 역사의 고통스럽던 시기마다 꽃같이 숨져 간 무수한 충심(忠心)들이 다시 살아오는 그 모습임이 분명하리.
꽃이 지는 가지 아래에 서 보자. 왠지 가슴 가득히 슬픔은 차오르고 그 슬픔의 물 위에 꽃잎은 낭자하게 떨어져 흐르는 것 같다.
4·19는 민주화·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세계사적 혁명의 역사다. 우리의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흐르는 무엇을 느낄 것도 같다.
4월 한 달 동안 우리 곁에는 꽃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꽃을 볼 수 있는 특혜와 교훈의 달이기도 하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국가 안위를 위해 꽃다운 단심(丹心)을 보여 준 수많은 애국 선인들의 공헌도 클 것이다.
먼저 가신 애국 충신들의 헐떡이는 숨결로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자기 모습을 돌이켜보는 슬픔과 고독으로 마음의 때를 씻어봄 직하다.
그리해 70년 전의 함성! (1950년 4.19 혁명) 우리의 혈관에 새로운 역사의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저 4월 혁명의 역사적 의미도 새롭게 되새겨 봄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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