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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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보내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5.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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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7년 8월 2일 개봉한 ‘택시운전사’의 최종 관객 수는 1,218만 9,654명이다. ‘택시운전사’의 천만영화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영화여서다. 5·18민주화운동이 잊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현재화된 역사인걸 확인시켜준 셈이라 할까.

조기 대선의 정권교체후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치권 관람도 천만영화에 한몫했지 싶다. ‘택시운전사’가 여느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와 다른 것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제3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다. 광주와 전혀 상관없는 서울 사람과 외국인의 3인칭 관찰자 시점인 셈이다.

그 점에서도 ‘택시운전사’의 천만영화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광주라는 한 지역의 비극적 참사가 아니라는 역사인식이 방증된 셈이어서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현실로 돌아오면 사정이 다르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사상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광장에서 열렸다. 거기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들”이 단적으로 그걸 알려준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처벌이 목적이 아닙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입니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뒤집어 보면 밝혀야 할 것이 많고, 전두환 등 가해자들이 이제라도 진실을 털어 놓으면 용서하고 비로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5·18민주화운동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세력이 거세게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을 무장 병력을 투입해 제압한, 벌어져선 안될 비극적 참사다. 이후 이어진 제5공화국만 보더라도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정권을 잡기 위해 자행한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는게 엄연한 팩트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송선태 위원장에 따르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에 투입된 병력은 25개 대대 2만 53명”(한국일보, 2020년 5월 16일)이다. ‘화려한 휴가’에 투입된 무장군인들로 인해 생긴 피해자 규모는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후 사망 추정자 376명(5·18기념재단이 2005년 기준으로 집계한 것. 앞의 한국일보)이다.

역시 같은 한국일보에 따르면 5·18을 현장에서 경험했던 선교사 피터슨 목사는 사망자 수를 800여 명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40년이 지나도록 정확한 피해자 집계조차 안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된 건 분명한 팩트다.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도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팩트엔 변함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5·18 당시 부모 자식을 잃고 흔적조차 찾지 못한 행불자 가족들은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5·18 당시 연행·구금자 5,500여 명은 살아 남았어도 장기간 통증에 시달리며 진통제·알코올 등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이미 오래 전 저술(2000년 변주나 전북대 간호학과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 공저 ‘치유되지 않은 5월’)로 드러난 바 있다.

한겨레(2020년 5월 12일)에 따르면 지난 해 김명희 경상대 교수가 5·18 39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에서는 “1980년부터 지난 해까지 모두 46명(추정)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분통이 터지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렇듯 막대하면서도 극심한 피해자들이 있는 5·18인데도 40년이 되도록 왜 이 모양인가?

그보다 더 분통이 터지고 어이가 없는 것은 5·18을 “간첩의 폭동이고 시민군 다수가 북한 특수군”,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 “폭동인데,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따위 망언을 일삼는 일부 사람들의 작태다. 한겨레 사설에서 보듯 그들의 그런 망언이 “5·18에서 싹튼 민주주의를 한껏 누리는 것”인 셈이니 참 아이러니한 씁쓸함이라 할까. 어찌 보면 그들은 광주 학살을 자행하고,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민단체들의 ‘사죄하라’는 시위를 당하는 전두환 일당보다 더 나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의아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군인들이 가담했는데도, 40년이 되도록 진실이 밝혀지긴커녕 왜 전두환의 ‘모르쇠’가 계속 먹히는가 하는 점이다. ‘화려한 휴가’에 투입된 2만 53명 군인중 “4,700명의 장교들, 특히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1만 4,000명의 사병들이 진실 규명의 열쇠”라는 송선태 위원장의 말에 희망 섞인 기대를 가져본다.

그나마 다행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원내 지도부와 함께 광주를 방문해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갈등과 상처를 모두 치유하고 5·18 정신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힌 점이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해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해 물의를 빚은 의원들의 발언에 대해서도 “잘못됐던 것”이라며 사과의 뜻을 비쳤다. 부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한 이벤트성 제스처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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