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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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8.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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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다. 
일례로 ‘내란 수괴 전두환’(5·18서울기념사업회 한상혁 고문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쓴다.)이 5·18광주민중항쟁으로 피붙이를 잃은 수많은 유족들의 피눈물 맺힌 한(恨)과 오불관언(吾不關焉)인채 골프도 치고 회식도 하는 등 활개치며 살 수 있는 나라여서다.

또한 5·18을 “간첩의 폭동이고 시민군 다수가 북한 특수군”,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 “폭동인데,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따위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나 전두환을 연호해대기까지 하는 ‘내란 추종세력’(한 고문은 전두환이 내란 수괴라면 광주 금남로에 몰려와 5·18 왜곡하는 세력도 ‘극우’ 등으로 부르지 말고 이렇게 부르자고 주장한다.)이 설쳐대는 나라여서다.
대한민국이 너무 살기 좋은 나라라고 느낀 건 그뿐이 아니다. 
가령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8대 0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북한이야. 김정은이야”라고 거침없이 말하거나 “공산당과 손잡은 좌파 빨갱이들이 기획한 탄핵”이라 외쳐댄 소위 태극기 부대가 기승을 부려도 되는 나라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랍고 끔찍한 일이다.
좀 거슬러 올라가봐도 그런 일은 있다. 예컨대 2005년 12월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졌을 때도 대한민국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라는 느낌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잠시 개요를 살펴보면 같은 해 11월 전국의 농민 등이 서울로 올라와 대규모 수입쌀 비준 반대 시위를 했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농민 2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시위농민 사망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책임자를 가려내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 국가가 배상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사과와 함께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청장 거취에 대해서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허준영 경찰청장은 “거취 문제는 내가 결정한다”며 사실상 항명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틀만에 태도를 바꿔 자진사퇴로 물러나긴 했지만, 허 경찰청장의 항명 파동은 일찍이 없던, 지금까지도 참 희한한 일로 남아 있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 코레일 사장을 거쳐 19대 총선과 재보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두 번 다 낙선했다.
검·언유착 의혹사건을 둘러싼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과 갈등, 나아가 힘겨루기를 보면서도 대한민국은 너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결국 윤 검찰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지휘를 따르기로 해 일단락되긴 했지만, 국민들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한동안 지켜봐야 했다. 당연히 안봐도 될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런 희한한 일의 공통점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경찰·검찰·국정원 3대 권력기관을 장악하거나 휘하로 두지 않는 등 그만큼 민주주의를 한참 숙성시킨 때 벌어진 일인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독재시절은 그만두고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과연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전직 보좌관과 조카딸이 각각 회고록을 내 현직 대통령 공격에 나서는 희한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미국 같은 나라가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선 낯선 장면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내란 수괴’나 ‘내란 추종세력’들이 그렇듯 활개치고, 권력기관장들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그런 살기 좋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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