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견자(虎父犬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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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견자(虎父犬子)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09.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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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더불어민주당이 9월 18일 당소속 김홍걸 비례대표 의원을 제명했다. 
이낙연 대표가 새로 만든 당 윤리감찰단에 김 의원을 1호 조사 대상으로 회부한 지 이틀 만의 징계 조치다. 

통상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윤리심판원의 심의·의결 외에도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 의결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김 의원 제명은 전격적이다.
김 의원 제명 조치는 민주당 당규에 따른 것이다.
“당대표가 비상한 시기에 중대하고 현저한 징계 사유가 있거나 처리를 긴급히 하지 않으면 당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십이분 활용해 전광석화(電光石火)식으로 ‘비상 징계’한 것이다.
민주당 당규에 따른 ‘중대하고 현저한 징계 사유’는 김 의원의 재산 신고 누락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가령 김 의원은 2016년 6월부터 12월 사이에 강남 아파트 세 채를 사들여 ‘아파트 쇼핑’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그나마 한 채를 처분했다더니 아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새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4억 원이나 올려 받은 것으로 알려져 공분(公憤)을 샀다.
엄밀히 말하면 김 의원 제명은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하지 않을 걸로 본 윤리감찰단 보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김 의원은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께 심려를 끼치고 당에 부담을 드린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도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승낙하고 대면조사 일정까지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며 감찰 조사 비협조를 부인했다.
그런 걸 보면 특히 부동산 정책으로 지지율 하락 등 홍역을 심하게 앓은 민주당이어서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속전속결 징계로 보인다. 
아무튼 이로써 비례대표인 김 의원은 정치적으론 치명상을 입게 됐지만, 그러나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국회의원 신분은 유지하게 됐다.
2016년 소중한 사람이라며 당 대표 시절 김 의원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문재인 대통령도 할 말이 없게 돼버렸는데, 설사 김 의원이 자진 사퇴해 정계를 떠난다 해도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렇게 되도록 내조한 여성운동가 이희호 여사의 아들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이런 김 의원 행태에 대해 정의당은 호부견자(虎父犬子)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아버지는 호랑이인데, 그 자식은 개라는 뜻의 말이니 이보다 더한 치욕이 있을 수 없다. 
나아가 정의당은 “김 의원은 더 이상 추한 모습으로 부친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고 의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출신으로 DJ의 측근이었던 민주당 김한정 의원도 이날 “집을 여러 채 구입했는데 납득할 만한 설명을 못 하고 있다. (김 의원이)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며 사실상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고 보면 김 의원의 ‘정치 인지 감수성’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기는 일련의 행태다.
한 동교동계 인사는 “김 의원이 DJ의 동교동 자택과 노벨평화상 상금을 두고 형인 김홍업 전 의원과 법적 다툼을 벌이면서 완전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도 했다. 
이는 김 의원의 배다른 형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의 32억 원 상당의 동교동 사저(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살던 집)를 둘러싼 법정 분쟁을 말한 것이다.
지난 해 12월 김홍업 이사장은 “김 의원이 동교동 사저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부동산 처분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재판부가 김 이사장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자 김 의원이 이의신청했지만, 9월 10일 서울 중앙지법 51부(부장판사 한경환)는 “김 의원이 혼자 사저를 처분해선 안 된다”며 김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오래된 얘기지만 김 의원의 정치 인지 감수성이 낮은 듯한 일화가 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셋이 잇따라 연루된 이른바 ‘홍삼 트리오’ 사건 때 김 의원은 36억 원 넘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뇌물액에 견줘 형량이 너무 낮아 논란과 함께 대통령 아버지를 곤궁에 빠뜨리고 결국 국민 사과까지 하게 만든 아들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지만, 김 의원의 그런 행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그렇게밖에 자식을 가르치고 키우지 못했나 하는 탄식을 갖게 한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장삼이사도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며 살려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김 의원 행태가 다른 국회의원들의 장사꾼 같은 일탈처럼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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