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살기 좋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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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살기 좋은 나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1.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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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세상사가 어디 한둘일까만 요즘 압권은 아무래도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다툼이 아닐까 한다. 
둘 다 대통령이 임명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라 할 수 있기에 그런 다툼은 일단 너무 의아스러운 풍경으로 비쳐진다. 

더불어 대한민국이 너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절로 갖게 한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때는 그만두더라도 박근혜·이명박 대통령 시절엔 감히 벌어질 수 없었던 일이 수개월째 벌어져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피로도가 쌓여가게 하고 있어서다. 그 시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성과 함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을 장악, 통제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이명박 대통령 시절까지도 상명하복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권력의 흐름에 언감생심, 하극상을 단행할 검찰총장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단,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 했다. 민주주의를 숙성시키는 올바른 방향이었지만,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의 항명 파동이나 그 뒤 이어진 박근혜·이명박 정권에서 보듯 성공하지 못했다.
추 장관의 사상 두 번째라는 수사지휘권 발동이나 처음인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권 행사에 말들이 많지만, 당시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한용 기자 지적처럼 “첫째,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사의 수사·재판에 개입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심복이었다. 둘째, 장관이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검사들에게 구체적인 사건 처리를 지휘·감독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법무부장관은 대부분 검사 출신”이었(한겨레, 2020년 10월 21일)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을 장악하거나 휘하에 두지 않고 독립시켜 2년 임기제를 보장해주니까 검찰총장이 ‘까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박수를 쳐줄만하지만, 그러나 도를 넘어섰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과거처럼 장악하지 않은 걸 십이분 활용을 넘어 악용하고 있는 셈이라 할까.
그 하이라이트는 국정감사장에서의 발언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선포하듯 말한 윤 총장은 퇴임후 정치할 것이냐는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 질문에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론 검찰총장이 국민을 상대로 한 공개석상에서 할 적절한 말은 아니다.
또한 이 발언은 지난 해 인사청문회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 치던 윤석열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이낙연과 이재명 등 유력 후보 정치인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르자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방방 뜨는 모양새를 보인 발언이기도 하다.
대선주자 선호도 1위의 여론조사도 그렇다. 세상에 현직 검찰총장이 여론조사 후보군에 포함된 초유의 일에다가 그것도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각되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이런 정상이 아닌 나라의 국민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진짜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진짜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건 추 장관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윤석열 현직 검찰총장을 차기 대권주자 1위로 만든 건 추 장관이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부하가 아니라는 검찰총장을 법무부장관이 찍어 누르거나 잡들이하니 오히려 반정부 내지 비문(非文)쪽 사람들에게 탄압을 받는 검찰총장 이미지가 강고(强固)해졌다는 얘기다. 그것이 차기 대권주자 1위라는 여론조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추 장관의 직접적인 사퇴 압박에 이어 급기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윤 총장을 향해 “자숙해야 한다”는 공개적 쓴소리를 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정치적 중립 시비, 검찰권 남용 논란 등을 불식시킬 생각이 없다면 본인이 (거취를) 선택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모두 자진 사퇴하라는 요구일 뿐인데, 단순히 그럴 문제가 아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은 두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개혁을 완수해 국정의 성과를 쌓으려는 정치권력과 무소불위의 힘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검찰권력의 대립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앞의 한겨레)라는 분석이 있는데, 둘의 다툼을 그대로 둔다면 이번에도 검찰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임명한 검찰총장이 책무를 소홀히 하거나 젯밥에 더 신경을 쓰는 지경이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2년 임기제에 연연해 그냥 놔둘 일이 아닌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정치적 총장’ 행보를 하는 등 너무나 귀책사유가 명백하게 드러나서다. 
바라건대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져도 되는 너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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