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종말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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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종말을 기다리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1.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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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공무원노동조합 사무국장 김대원

우리 정읍시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지난 11월 20일 발생한 공무원 폭행사건에 대해 11월 24일에 정읍경찰서에 가해자를 폭행 및 협박 혐의로 고발했다. 
인간적으로는 가슴 아프지만 고발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전체 정읍시청 공무원들의 명예가 달려있는 문제도 있으며, 이보다 더 큰 대의는 바로 이번 고발을 기회로 ‘폭력의 고리’를 끊어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폭력(이하 폭행과 폭언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칭한다)은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에서 칭하는 물리적인 수단이나 힘에는 흔히 조폭들이 사용하게 되는 타인보다 우월한 신체적인 힘도 있지만, 타인보다 우월한 권력적 지위, 경제적 지위의 개념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형법에서는 형법 각칙 상의 상당수의 범죄를 특별히 다루고자 별도로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해 오고 있으며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의거 특별법 우선의 원칙을 적용해 그 죄질을 엄중히 다루고 있다.
폭력은 야누스적 본성을 가진 인간의 내밀한 본능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폭력은 명백히 그 어떠한 동기이든 형태이든 용납될 수 없다.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 J. M. 쿳시는 자신의 대표작인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barians)’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식민국가의 백성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해 벌이는 타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침략에 따른 35년간의 기나긴 폭력의 역사와 조우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적 아픔과 같은 맥락에 있기에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추방돼야 할 치욕의 단어이다.
이제부터는 폭력에 대한 학문적 논쟁을 뒤로하고 공무원노동자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 보자.
지역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엮여있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일반행정기관 공무원들은 공무원 조직 속에서 이른바 ‘아슬아슬한 고리(risky ring)’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인신구속력, 이른바 사법적 권한을 가진 경찰, 검찰, 법원을 가보면 알 것이다. 이 곳에서 민원인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자신들이 아쉽고 약한 상태에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청 민원부서나 읍면동사무소에만 오면 민원인들(모든 민원인들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 일부분은 우리 행정공무원들을 자신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싶을 정도의 행태를 보인다. 
그들에게 ‘폭력의 위험성’을 말한들 씨알조차 먹히지 않는다. 
이들의 행태에 우리 행정공무원들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할라치면 바로 불친절 공무원으로 낙인해 인터넷에 자의적 해석의 내용을 마구 올려댄다. 
이들의 행태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일부 신규공무원들은 어렵게 들어온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나가는 직원들을 단지 나약한 존재로만 치부할 것인가.
이 ‘아슬아슬한 고리’ 속 존재인 지방행정공무원 들이야말로 지역주민의 삶에 빛을 비춰주는 존재, 정확히 말해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정당한 계약을 맺고 정당한 댓가 속에서 일하는 성실한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 고마운 존재들에게 일부 시민들이 보여준 행태가 어떠했는지를 이제는 당당하게 지역시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우리 정읍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시발점인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온 산하에 뿌려졌던 핏빛의 울음은 제국주의와 국가주의 폭력에 대한 항거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향연을 누리는 우리들의 의무는 제대로 된 민주시민의 자세이다. 
민주주의는 폭력을 배제하고 서로 다른 의견과 욕망을 대화와 타협, 그리고 엄정한 법률주의의 근간 위에서 시민의 권리와 의무가 행사돼야 한다. 
폭력이 배제된 사회적 합의,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일 것이다.
이번을 기회로 정읍시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공무원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사슬’을 끊어버리려 한다.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민원인과 공무원 간의 훈훈한 덕담과 격려가 오가는, 이토록 바라는 평화로운 동네의 모습이 그리도 이루기 어려운 사회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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