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라는 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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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라는 나라2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0.12.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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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한국영화에서는 범인을 쫓는 경찰이 총을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꺼내 쏘기는커녕 오히려 맥없이 당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애써 쏘더라도 공포탄일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저런, 등신’ 하며 안타까워하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적어도 이 땅에선 범인 잡는 경찰조차 총 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툭 하면 경찰이 총을 쏴대는 나라다. 일단 총기 소지가 합법화돼 있는 미국이다. 그로 인해 경찰은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7∼2018년 연평균 105명의 경찰이 근무 중 목숨을 잃었다. 경찰관들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강경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인한 사망 사건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침묵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피해자들이 주로 흑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가령 5월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숨진 사건이 그렇다. 널리 알려진 대로 조지는 백인 경찰 데릭 쇼빈에게 8분 46초 동안 목을 짓눌려 숨졌다.
이 사건은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한겨레 황준범 특파원 리포트 ‘현장에서’(2020.6.4.)에 따르면 그 자체로 인종차별과 공권력의 폭력이라는 미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 뒤 벌어지는 상황 또한 초현실적이다. 워싱턴에서의 시위 닷새째인 이날 백악관 주변은 경찰은 물론 군용차량들이 주요 길목을 막고 있었다. 백악관 경계로부터 세 블록(반경 약 400~500m)에 일반차량 통행을 차단했다.
상공에는 하루 종일 헬기가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빙빙 돌았다. 백악관 둘레에는 전날까지 없던 약 240㎝ 높이의 검은색 철망이 설치됐다. 철망 너머 백악관까지의 완충지대라 할 수 있는 라파예트공원에는 경찰과 군인들이 헬멧과 방패를 든 채 시위대를 마주 보고 늘어섰다. 미 국방부는 워싱턴에 투입할 수 있도록 1,600명의 헌병과 보병대대 등 현역 육군 병력을 인근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2020년 미국의 수도라고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는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집회가 이뤄진 사건으로 알려졌다. 그뿐이 아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고 미국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가령 유럽에서는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폴란드·포르투갈·스페인 등의 대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다.
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날 오타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예고 없이 등장해 ‘무릎 꿇기’에 동참했다. 트뤼도 총리는 6월 2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시위대 폄훼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은 뒤 21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트뤼도 총리는 한 손에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고 쓴 티셔츠를 들었다.
그런 와중인 6월 12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흑인 남성 레이샤드 브룩스(27)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날 애틀랜타 풀턴카운티 검시소는 브룩스가 뒤쪽에서 두 발의 총을 맞았고, 이 중 등에 맞은 총상으로 인해 장기 손상과 출혈이 일어나 사망했다고 밝혔다. 툭 하면 경찰이 총을 쏴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상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인용한 한겨레(2020.6.16.)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004명이다. 인구 1,000만명당 31명꼴이다. 2014년 미국 미주리주 소도시 퍼거슨에서 비무장 상태였던 18살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숨진 이후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었지만, 이후 5년간 매해 이 수치는 1천명 선에서 줄지 않고 있다.
반면 2005년 이후 15년간 총격 살인 또는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된 경찰 수는 모두 110명에 불과하다. 특히 실제 처벌을 받은 이들은 27명(살인 5명, 과실치사 22명)으로 더 적다. 그러니까 흑인 시민을 죽게한 백인 경찰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만연한 미국인 것이다. 8월 23일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벌어진 흑인 블레이크 피격 사건 역시 그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영상을 보면, 블레이크는 경찰이 따라 걸어오는 가운데 차 문을 열고 운전석으로 들어갔고 경찰은 7발의 총을 쐈다. 경찰은 한 여성으로부터 “이 구역에 있으면 안 되는 남자친구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는데, 블레이크는 총알 4발을 맞았다. 당시 차 안에 각각 3, 5, 8살인 블레이크의 세 아들이 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과 분노를 키웠다.
이 사건은 미 전역에 불붙은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 반대 시위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미국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 경기가 모두 취소되는 등 프로스포츠를 멈추게 했다. 미국프로농구뿐 아니라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는 다른 종목의 스포츠계로도 번졌다. 가령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도 밀워키 브루어스가 블레이크 사건에 항의하며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를 거부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척수 관통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블레이크는 영상에서 “24시간 내내 고통스럽다. 숨쉴 때도 잘 때도 옆으로 움직일 때도 먹을 때도 아프다”(한겨레, 2020.9.8.)고 말했다. 경찰의 과잉 대응이 유독 흑인들에게 집중돼 인종차별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다. 그것도 민주주의가 잘돼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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