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금테라도 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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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금테라도 둘렀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3.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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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달 26일 처리될 것으로 알려졌던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통과가 무산됐다. 본회의 상정조차 못했으니 2월 임시국회 처리가 물 건너간 데 이어 언제 처리될지도 불투명해졌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는 2월 19일 중대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한 바 있다.
전국 의사 총파업 예고에 이어 “법안이 법사위에서 의결되면 진료와 백신 접종 관련된 협력체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 으름장을 놓는 등 강력 반발해온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법사위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며 “의료계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겠다”고 환영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이날 회의에서 국민의힘 장제원·윤한홍 야당 의원들은 ‘과잉금지의 원칙’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이에 여당 의원들도 한발 물러서면서 법안 처리가 미뤄졌다. 지난 해 여름 집단휴진 총파업으로 재미를 본 대한의사협회의 반발에 밀린 모양새가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국민의힘 법사위 의원들이 제동을 건 것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한 때문인 듯하다. 실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복지위에서 처리된 직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의사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의사 심기를 건드리는 법을 왜 (민주당이 처리하려고) 시도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했다.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의사 출신의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도 비슷한 말을 하며 대한의사협회 편을 들었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나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서 보듯 처리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여당임에도 주춤하며 한 발 물러선 이유가 뭐냐는 의구심이 생겨서다.
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의사들의 심기는 관리하고, 국민의 심기는 무시한 행위”라며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지만, 4·7보궐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더불어민주당 속내야 어찌 됐든 법사위 통과 무산은 의료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68.5%(10명중 7명꼴)의 국민을 배반한 꼴이 됐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의료법은 1973년부터 범죄의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했다. 하지만 2000년 정부가 의약분업을 하면서 개정한 ‘의료악법’에 면허취소 대상 범죄의 범위를 ‘허위진단서 작성 등 형법상 직무 관련 범죄와 보건의료 관련 범죄’로 좁혔다. 그러니까 20년 넘게 의사들만 치외법권적 특혜를 누린 것이다.
현재 변호사·공인회계사·법무사 같은 전문직종의 경우 의사들과 달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관련법에 의해 일정 기간 자동으로 자격이 박탈된다. 공무원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해고(당연퇴직)된다. 형평성 문제 등 잘못된 법 적용을 정상화하려는 의료법 개정안이라 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월 22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선량한 의사가 직무와 무관한 사고나 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졸지에 면허를 잃을까 봐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에 따르면 의사 외에 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 등 모든 의료진이 이번 개정안의 적용을 받지만, 지금까지 반대 의견을 표명한 단체는 대한의사협회가 유일하다.
한편 여성계는 “현행 의료법으로는 성범죄 의사의 의료행위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의료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가령 한국여성의전화는 “개정안은 의료인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취해야 할 상식적이며 기본적인 조치”라며 법 개정 필요성이 범죄통계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한겨레(2021.2.25.)가 보도한 ‘2019년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전문직(의사·변호사·교수·종교인·언론인·예술인·기타) 피의자는 5만 2,893명이다. 이 가운데 의사가 5,135명(9.7%)으로 가장 많았다. 종교인(4,887명), 예술인(3,207명), 언론인(1,206명), 교수(1,205명), 변호사(679명)가 뒤를 이었다. 범죄 유형을 뜯어보면,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136명(변호사는 13명)이었다.
최근 5년(2015∼19년) 통계를 합하면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613명에 달한다. 전문직 중 가장 많다. 사기·횡령(지능범죄)을 저지른 의사는 2019년 881명으로 종교인(1,123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의사가 살인·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더라도 면허를 취소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단체가 자신들의 생존권이나 권익을 위해 주장과 함께 파업할 자유가 있는 민주사회이긴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번번이 특권의식 쩌는 모습을 보여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지난 해 여름 대한의사협회 파업때 간신히 참으며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환자들, 나아가 국민을 볼모로 정부와 정치권을 이기려고만 하는 대한민국 의사들은 금테라도 둘렀나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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