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재앙에 맞서는 일본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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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창] 재앙에 맞서는 일본인의 태도
  • 투데이안
  • 승인 2011.03.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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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쓰나미가 선박을 집어 삼키고 자동차를 장난감처럼 구겨버리고 해안마을을 송두리째 휩쓸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지켜보던 일본의 한 TV앵커는 넋이 나간 듯 말했다.

자연이 한번 용틀임을 하자 인간과, 인간이 이뤄놓은 문명은 어이없을 정도로 맥없이 궤멸했다. 미국 뉴올리언스를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 중국 쓰촨성과 아이티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피해도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스펙터클하진 않았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재난 영화조차 무색하게 만든 일본 강진은 가공할 자연의 위력을 다시 한번 인류의 머릿속에 새겨 넣고 있다.

# 국화와 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일본특파원 시절 겪었던 1995년 고베 대지진을 회고하는 글을 트위터에 소개하며 일본인들이 이번에도 인내와 용기를 보여줄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폐허가 된 거리에서 일본인들이 보급품을 먼저 차지하려고 다투거나 상점을 약탈하는 광경을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그는 "두 사람이 내 상점을 약탈했다"는 한 마트 주인의 말을 듣자 오히려 반색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연구했던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두 가지 특성을 '국화와 칼'로 설명한다.

일본인들은 마지막 소품 하나까지 모두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사회 질서를 철저히 준수하는 태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분재용 국화도 제자리를 지키도록 눈에 띄지 않는 가는 철사로 고정시킨다. 국민들은 애써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자보다 몇 세대가 지나던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가문과 장인을 더 존중한다.

일본인들은 또 '자기 몸에서 나온 녹은 자기가 닦아낸다'는 표현에서 드러나 듯 몸을 칼과 동일시한다. 그런데 칼은 항상 광채가 날 정도로 날을 세워놓아야 쓸모가 있다. 이렇게 자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행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일본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할 정도로 인기를 끈 일본영화 '하치 이야기'는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일본 구세대에 바치는 오마주로 볼 수 있다. 매일 기차역 앞 분수대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하치는 주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에도 그 시간이 되면 그 분수대 똑같은 장소에 나타나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린다. 몇 년이 지나도록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시간이 되면 그 자리를 지키던 하치는 결국 분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하치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제자리를 지키고,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의식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처럼 사랑받았다. 이번 재앙에서도 일본인들이 약탈에 나서지 않을 거란 예측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 자연의 두 얼굴

지진의 공포는 또 일본인들에게 자연은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되는 숭고한 존재란 의식을 심어놨다.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 역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공포의 대상이며 동시에 숭고한 존재다. 나무, 돌, 연못 등 자연을 고스란히 축소해 놓은 일본식 정원은 일종의 자연에 바치는 제단과 같아서 어느 누가 이파리 하나도 함부로 손대선 안 된다. 이번에 두 눈으로 확인한 것처럼 자연의 균형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계심은 일본인들의 DNA에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모든 분야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은 생존본능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한반도는 너그러운 어머니다. 어머니/자연은 오랜 역사를 통해 배고픈 이들에겐 젖줄로, 삶에 지친 이들에겐 안식처로, 병든 이들에겐 경이로운 치료공간으로 모두를 차별 없이 품어줬다. 이제 이웃나라의 참상을 지켜보며 우리가 어머니의 자애에 기대 너무 응석받이처럼 살아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낌없이 모든 걸 내준 노모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한 건 아닌지 반성할 때다.

아직 진행 중인 이 재앙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이 보여주는 절제와 인내심과 용기는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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