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과 역사 속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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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계절 5월과 역사 속 5월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5.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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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봄볕이 상쾌한 5월이다. 꽃도 피고 바람도 살랑인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은 1년 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다. 산과 들은 그 푸르름을 더해 눈이 부실 정도다. 꽃 진 자리에 움튼 연두 잎이 어느새 신록으로 채워져 온 세상이 푸릇푸릇 빛난다. 하얀색에서 노란색까지 풀꽃들의 향연이 끝난 산야는 온통 초록 일색이다.
5월은 색 잔치의 계절이다. 눈에 보이는 건 초록빛이다. 풀잎도 예쁘고 모든 나뭇잎도 예쁘다. 그렇다고 초록이 다 같은 초록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의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진초록도 있고 연초록도 있고 초록 계통의 색이 여러 가지다.

봄볕을 받고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감잎은 약동하는 생명의 모습이다. 눈을 감아도 눈 바깥에서 봄이 일렁인다. 생명이란 어김이 없다. 발호하듯 일어나 세상을 뒤엎는다. 이렇듯 5월은 색의 파노라마이며 생명에게 절정의 경지다.
초록의 나뭇잎 중 바람을 안고 흔들리는 버드나무에 눈길이 간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봄이 오면 냇가에 있는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불었던 기억이 있다. 가지를 길게 늘어 뜨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능수버들. 바람에 휘휘 늘어질 때마다 연녹색 물감이 흩어지는 듯하다. 바람에 잘 흔들리는 성질을 가진 버들은 바람의 집이다.
많은 시인과 묵객들은 버드나무를 소재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동양에서는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흔들림은 육체적인 여인의 몸매에 비유하기도 했다. 호리호리하고 가는 허리를 유요(柳腰)라 하며 미인의 몸짓을 유태(柳態), 아름다운 눈썹을 유엽미(柳葉眉)라 한다. 기생이나 매춘부들을 일컬어 화류계(花柳界)라 했듯, 누구든 길가 버들과 담 밑의 꽃은 꺾을 수 있다는 노류장화(路柳墻花)도 이런 뜻으로도 쓰인다. 말하자면 화류계의 여자는 누구나 다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의 가늘고 길게 늘어진 가지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세찬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의 자비사상과 결합하여 관음보살로 비유되기도 한다. 
5월은 가정의 달 이자 청소년의 달이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정에 관한 기념일로 채워져 있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뜻깊은 달이다. 가정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혈연이라는 인연을 맺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안식처이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 역사의 5월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5·16, 5·17, 5·18 등 민족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굵직한 사건들로 소용돌이쳤기 때문이다. 5·16에 대한 공과는 지금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일부에서 박정희 향수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5·16에 대해서는 쿠데타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5·18은 전두환 신군부의 내란 및 군사반란에 맞서 싸운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이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봉기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80년 광주는 6월 항쟁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동력이었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운 자양분이다. 따라서 5·16과 5·18은 국민이 부여한 합법적인 권력을 무력으로 찬탈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는 18일은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이다. 지난 41년의 한국 현대사는 오롯이 5·18 민주화운동 위에 세워졌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민주적 가치들이 41년 전 광주 시민의 항거와 희생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5·18의 가치를 폄훼하고 심지어 시민군 다수가 북한 특수군이었다고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5월은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계절이지만 왠지 5월 답지 않다. 봄이 한 가운에 와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19로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의료진과 환자를 지치게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를 극복하고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그저 시간과 체력이 필요할 뿐이다.
5월의 산하가 푸르게 빛난다. 풀잎은 풀잎대로 나뭇잎은 나뭇잎대로 짙어가는 초록빛이 아름답다. 삶에 지쳐 힘들 때는 초록 숲으로 들어가자. 5월의 숲에 들면 투명한 신록이 몸 안으로 스민다. 숲에 드는 순간 온갖 소음은 사라지고 자연과 하나 된다. 그러나 해마다 5월은 푸르지만 그 속에는 아픈 질곡의 역사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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