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급식, 불량 피복, 21세기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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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급식, 불량 피복, 21세기 한국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5.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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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70~80년대 군대 생활은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한겨울에 입대를 하게 되면 훈련받는데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과 추위를 견뎌내며 완수해야 하는 혹한기 훈련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이것이 군대라는 특수조직의 임무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의 병영 생활은 놀랍도록 처우가 개선됐다. 구타도 사라지고 병사 봉급이 크게 오르고 복지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휴가 또한 원하는 날짜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외출·외박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일과 후 휴대폰 사용과 개인용무 외출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병사들을 게임방으로 실어나르는 군용버스를 운용하는 군부대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한국 군대는 정신적·육체적 또는 의식주가 풍족한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휴가를 다녀온 뒤 부대에서 격리 조치된 병사들에게 지급된 부실한 식사가 SNS상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도시락을 보면 흰 쌀밥과 반찬 3가지가 담겨 있다. 반찬은 김치와 절인 오이지 두 조각, 닭볶음이 전부다.
자신을 육군 51사단 소속 예하 여단 소속이라고 밝힌 A병사는 “핸드폰 반납하고 티비도 없고 밥은 이런 식인데 감방이랑 뭐가 다르죠”라며 “휴가 다녀온 게 죄인가요?”라고 부실한 식사를 지적했다.
또 다른 제보 글에는 흰색 스티로폼 도시락에 밥과 나물 한 숟갈, 깍두기 두 쪽이 전부인 사진이 올라왔다. SNS에서는 ‘어느 부대 급식이 더 부실한지’ 경쟁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70~80년대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이런 부실한 급식이 제공되다니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찬이 없는 밥상은 앙꼬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군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나라는 충성을 요구할 자격도 없다. 군부대 급식이 부실한 이유는 윗선에서 누군가가 부식비를 빼먹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군대의 급식이 부실하면 그 급식을 먹는 병사들의 전투력이 부실해진다.
여기에 군에서 병사들에게 지급해온 피복류 수십만 벌이 불량품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군에 피복류 6개 품목을 납품한 18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베레모, 운동복 등 3개 품목을 납품한 8개 업체가 기준 규격에 미달하는 불량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밝혀졌다. 땀 차는 활동복을 입고 비 새는 베레모를 쓰고 생활했던 것이다. 이런 불량품을 사는 데 총 182억원의 혈세를 낭비했다.
불량 제품이 납품된 건 허술한 품질보증 방식 때문이다. 일일이 검사할 수 없는 대량 납품 품목의 경우 제조업체에 공인기관 인증을 받도록 하는데, 평가를 받을 때만 제대로 된 제품을 쓰고, 실제로는 부실 제품을 납품하더라도 잡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방사청은 불량품을 납품한 업체 중 계약이 종료된 1개 업체에 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나머지 7개 업체에 대해서는 시정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방사청은 이와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불량 업체를 즉각 퇴출할 수 있도록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의 도입을 고려하고 납품된 군수품에 대해서 무작위 검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의 사기와 직결된 ‘밥’ 논란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장병 1명의 하루 급식비는 8790원으로 한 끼 단가는 2930원꼴이다. 인건비를 감안해도 중고생 급식 단가보다 떨어지는 수준이라고 한다. 급식비 자체가 적정한 수준인지 이번 기회에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병사들에 대한 방사청의 전투준비 기준은 아직도 구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붓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울러 코로나19 격리 병사들이 폐건물 수준의 창고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만큼 격리 시설 문제도 함께 점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방산비리는 곧 이적행위이다. 군대의 참담한 밥상과 엉터리 피복은 장병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자존감에도 상처를 줄 것이다. 때문에 방산비리는 어떤 경우라도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방산비리 관련자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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