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증오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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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증오범죄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7.1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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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내가 다시 미국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인종차별 저리가라 할 정도의 이른바 증오범죄가 만연한 나라여서다. 미국에서의 증오범죄가 도를 넘고 있다.미국에서의 증오범죄는 미국 인구의 약 6%를 차지하는 아시안계를 겨냥한 것이고, 우리 한국인들도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가장 끔찍한 건 2021년 3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대 세 군데의 마사지 업소에서 벌어진 연쇄 총격으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진 사건이다. 사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다. 애틀랜타는 한인 밀집 지역중 한 곳인데, 경찰은 이날 저녁 8시 30분께 유력한 용의자인 21살 백인 남성 로버트 에런 롱을 체포했다.

롱은 최근 SNS에 “그들(중국)은 ‘우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창조됐는지 알고 있으며, 50만 미국인을 죽인 것은 21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그들의 계획 중 일부일 뿐”이라며 “우리 시대 최대 악”이라 규정한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골드 스파 직원의 “백인 남성이 ‘아시안을 다 죽이겠다’고 말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언도 전해졌다.
그런 총질의 살상(殺傷)이 단순히 정신이상 ‘또라이’나 사이코패스의 우발적 범행이 아닌 걸로 보이는 이유다. 하긴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증오범죄 표적이 됐다. 가령 지난해 11월 흑인 10대 여러 명이 길을 걷던 아시아계 남성에게 주먹질을 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큰 피해를 당했다.
지난 1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80대 타이계 남성이 공격을 받아 머리를 다친 뒤 결국 숨졌다. 3월 초 뉴욕에서는 83살 한국계 여성이 아무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롱의 총질로 아시아계 여성 6명이 사망한 이후인 3월말에도 뉴옥 지하철에서 흑인 남성이 아시아계 남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퍼져 공분(公憤)을 샀다.
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24살 흑인이 쇠막대를 들고 난입해 기물을 파괴하는 등 난동 부린 기사도 읽을 수 있었다. “미국 16개 주요 도시에서 지난 1년간 전체 증오범죄는 7% 감소한 반면, 아시아계 시민을 겨냥한 증오 범죄만 149% 늘었다”(한겨레, 2021.3.18.)고 한다.
미국의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과 증오는 건국 즈음까지 들먹여야 할 정도로 뿌리가 깊지만, 최근 증가 추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기 내내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을 결집하려고 인종주의를 부추겼고, 코로나19가 확산된 뒤에는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면서 ‘중국 혐오’를 선동했다”(앞의 한겨레)는 것이다.
빈번한 증오범죄는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가령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제93회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조차 출국 전 두 아들의 걱정을 털어놓았다.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인 두 아들이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 가해자들은 나이 든 여성을 노린다. 경호원을 데리고 올 수 있는지 물었다”는 것이다.
윤여정은 일흔 넷 할리우드 데뷔에 한국 배우 첫 아카데미상 후보까지 돼 “인생은 나쁘지 않으며, 놀라움으로 가득하다”고 하면서도 단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끔찍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고, 올해는 상을 주러 미국으로 향한 봉준호 감독도 그런 상황이 무섭고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아시아ㆍ태평양계(AAPI) 증오를 멈춰라’는 지난해 3월 19일부터 올 2월까지 아시안 혐오사건 신고 건수가 3795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출신별로는 중국계 피해자가 42.2%로 가장 많다. 한국계의 피해도 14.8%나 됐다. 유형별로는 ‘욕설과 언어희롱’이 68.1%로 가장 많고 아시아계를 피하거나 꺼리는 행동은 20.5%, 폭행이 11.0%였다.
동아일보(2021.3.18.)에 따르면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너희 나라로 가라”고 욕을 하거나 택시(우버) 승차, 음식 서빙 등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들을 폭행하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 양상을 보이더니 급기야 총기 난사로 사람을 죽이는 사건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근데 한 가지 웃기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증오범죄 가해자 다수가 흑인이란 점이다. 종로에서 빰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백인에게 당한 흑인들이 거의 같은 처지인 아시아계를 향해 분풀이한다는 것인가? 아시아계와 동병상련에 가까운 흑인들의 그런 행태는 그들의 미국에서 살기 등 뿌리를 아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피해자란 인식을 그나마 불식시킬 뿐이다.
증오범죄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낸 데 이어 3월 11일에도 “증오범죄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근절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일벌백계의 강력한 처벌만이 그나마 증오범죄를 줄이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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