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한국 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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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한국 양궁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8.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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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지난 8일 폐막한 2020도쿄올림픽을 보며 느낀 이런저런 아쉬움을 떨쳐내준 건 단연 양궁이다. 나로선 축구에 이어 기어이 챙겨본 경기가 양궁이다. 양궁 경기를 챙겨본 건 다름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번번이 이기는 걸 볼 수 있어서다. 짜릿함과 함께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을 갖게해주곤 한 양궁 경기라 할까.
우리 양궁 선수들은 이번에 처음 생긴 혼성단체전부터 남자단체전·여자단체전·여자개인전 등 4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남자개인전에서 유일하게 8강에 오른 김우진이 1점차로 패해 전종목 석권은 무산됐지만, 총 5개가 걸린 양궁에서 한국 선수들이 따낸 금메달이 무려 4개인 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임을 과시한 한국 양궁의 쾌거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전종목 합쳐 따낸 금메달은 6개다. 그 금메달중 3분의 2인 4개가 양궁에서 나왔다. 처음 올림픽에 나선 대학생 안산 선수는 양궁사상 최초의 3관왕 및 한국 최초 여름올림픽 3관왕, 고등학생 김제덕 선수 역시 2관왕에 올랐다.
3년 후 열릴 파리올림픽은 물론 그 이후까지도 활동할 수 있는 연령대 선수여서 미래가 밝아 보인다. 더욱 든든하고 기대가 된다. 세계도 주목했다. 가령 AP통신은 7월 25일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의 올림픽 9연패 신화를 놓고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은 계속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지배’는 변함없을 것이다”
그렇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면서 세계 각국 외신들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AP통신은 한국을 ‘최강 양궁의 나라(The powerhouse archery nation)’라고 표현하며 “양궁 단체전 종목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9번의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양궁이 9회 연속 우승했다”고 추켜세웠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양궁 선수들은 초인적인 경쟁 속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만큼, 일단 그들이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는 것은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이뤄낸 것”이라며 “무자비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양궁 종목의 역대 9개 금메달은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한국 그리고 오늘 다시 한국이 모두 휩쓸었다. 그들은 왕조를 만들어냈다”고 칭찬했다. 아시아 매체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이 8강부터 결승까지 상대 팀에게 어떤 기회도 용납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올림픽 9연패로 한국 양궁 대표팀은 ‘독점적인 경지’에 이르렀다”며 “미국 남자 수영 400m 혼계영과 케냐 육상 장거리 장애물 경기의 올림픽 최다 연속 우승과 타이기록을 세웠다”고 전했다.
뿌듯한 게 더 있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이번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에 참가한 국가 가운데 7개국의 사령탑이 한국 출신이다. 미국팀을 이끈 이기식 감독은 “한국에서도 코치, 감독을 해봤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모른다. 밖에 나와서 보면 한국은 수준 자체가 다르다. 모든 팀이 결승 이전까지는 한국을 만나기 싫어한다”(한국일보, 2021.7.27.)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안산이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딴 직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을 놓고 ‘도 넘은 페미니즘 혐오’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안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한 누리꾼이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고 댓글을 달자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남초 성향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안산이 광주여대 출신인 것을 찾아내 “여대에 쇼트커트이면 무조건 페미(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안산이 과거 소셜미디어에 올린 ‘웅앵웅’ 표현을 두고 ‘남성 혐오(남혐)’ 성향이라고 몰아세웠다.
웅앵웅은 ‘말을 웅얼웅얼하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로 여성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였지만 단어 자체에 ‘남성 비하’ 의미가 담겨 있진 않다. 일부 누리꾼들은 “남혐을 위해 만든 단어를 쓴 이유가 뭐냐”, “메달을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요 외신까지 “사이버 폭력”이라 보도했고, 정치권 등에선 “국가 망신”이라며 안산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올림픽에서 여자개인전 결승을 앞둔 안산 선수에게 가한 그런 공격은 과거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매국노나 다름 없는 얼빠진 짓이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짧게 하든 길게 하든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인스타그램에서 “상처받지 않았으니 괜찮다”라고 말한 대로 여자개인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안산 선수가 더 자랑스럽다.
37년 동안 한국 양궁을 후원해온 현대차그룹도 특기할만하다. 아낌없는 지원을 하면서도 선수단 선발과 협회 운영에 일체의 관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서다. 협회 운영은 투명하게, 선수 선발은 공정하게 해달라는 단 한 가지 원칙만 주문했단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었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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